[美공화당 전당대회] 공화 '냉전 사고' 외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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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고 있는 공화당 전당대회는 1일로 이틀째를 맞으며 열기를 더욱 높였다.

안보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스탠퍼드대 교수와 조지 W 부시 후보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도울 전 적십자사 총재 등이 잇따라 연사로 등장했다.

걸프전 당시 지상군을 총지휘했던 노먼 슈워츠코프 예비역 대장도 위성으로 중계된 TV방송에 나와 클린턴 대통령의 군사정책을 비판하고 부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엔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과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가 참석해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대회장 밖에서는 공화당의 보수 우익색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 90여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37차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1일 발표된 정강.정책이 북한에 대해 초강경 일변도여서 주목을 끌고 있다. 73쪽으로 된 정강.정책 가운데 한반도에 대한 언급은 10여개 문장이다.

그러나 내용은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한 1980년 이후 발표됐던 다섯차례의 정강.정책 중 가장 강경하다.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우방이다. 반면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이탈해 있다. 미국은 북한 침공에 맞서 피를 흘렸고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걸 잊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오늘날에도 침략에 맞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한국.일본과 함께 계속될 것이다. 어떠한 공격으로부터 우방을 방어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

이같은 내용은 최근 남북한이 정상회담 이후 화해 분위기로 가고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일제히 이를 반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다. 문맥으로만 보면 마치 한반도에서 금방 갈등이 표출될 것만 같다.

물론 공화당은 원래부터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를 주창해 왔고 그런 기조는 역대 정강.정책을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84년 채택된 공화당 정강.정책은 "소련.북한.베트남은 침략 성향이 높은 적국이며 굳건한 우방인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 미군을 유지한다" 고 선언하고 "한국.태국.파키스탄 등 공산권과 대치 중인 국가들에 경제 및 안보지원을 해야 한다" 고 덧붙였다.

88년엔 한국의 안보 유지에 최대한 협력할 것임을 강조하고 "아시아 안보를 위해 일본이 역할을 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공화당의 군비강화.강경외교 방침은 전세계적으로 탈냉전이 진행되던 92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정강.정책은 "군축에 대해선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접근을 해야 한다" 며 군축 반대 입장을 완곡히 표현하고 있다.

공화당은 또 제한적인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전략방어체제(SDI)' 를 주창하면서 보수적 기조를 유지했다.

클린턴 행정부에 정권을 넘겨준 공화당은 96년 정강.정책에선 클린턴의 실용주의 외교를 집중 비난하고 중국의 민주화, 대만의 안전유지, 북한 핵문제 강경 대응, 북한과 베트남에 있는 미군 전쟁포로 송환 등을 주장했다.

그런 과거를 감안해도 공화당의 올해 정강.정책은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화당의 정강.정책이 실제 외교에서 그대로 구체화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막을 만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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