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묵인" 구청 위생계 전원 입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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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서울 강남경찰서가 단속 뒤 사후 처분을 소홀하게 했다는 이유로 국내 최대 규모의 유흥업소를 관할하는 강남구청 식품위생계 직원 전원을 형사입건, 구청과 경찰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경찰서가 관할 구청 공무원을 무더기로, 그것도 특정 계(係)직원 전원을 입건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구청측은 "구체적 비위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무더기 입건한 것은 유흥업소의 이권을 둘러싸고 구청을 길들이기 위한 보복성 조치" 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강남구청 관내에는 유흥주점(룸살롱)2백60여개·단란주점 8백6개 등 모두 1천60여개의 유흥업소가 영업 중이다.

◇ 경찰 수사=강남경찰서는 26일 청소년 고용.업태 위반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유흥업소들이 처분 후에도 불법영업을 할 수 있도록 묵인해준 혐의(직무유기)로 강남구청 식품위생계 전·현직 직원 16명 전원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행정처분을 받고도 영업을 계속한 혐의로 서울 강남구 Y주점 崔모(42)씨 등 업주 9명을 입건했다.

입건된 徐모(40)계장 등 위생계 직원들은 지난 1월부터 강남구 일대의 행정처분을 받은 유흥업소 2백42곳 출입문에 행정처분장을 직접 붙이지 않고 업주에게 건네주거나 우편으로 발송하는 등 불법영업을 눈감아준 혐의다.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54조에 따르면 행정처분을 할 때는 영업소명·처분내용·기간 등을 적은 게시문을 단속 직원이 업소 출입구 등에 부착해야 한다.

이들은 불법 영업을 한 업소 74곳을 적발해 놓고 경찰에 형사고발하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업주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는지를 캐기 위해 은행계좌·휴대전화 통화내역 등을 추적 중이다.

◇ 구청 반발=구청측은 "강남 지역 특성상 유흥업소에 직접 처분장을 붙이면 몸싸움 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잦아 보통 처분장을 전달하고 수령증을 받는 식으로 처리해왔다" 고 반박했다.

고발 의무도 복지부 지침에 따라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혐의 내용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신동우(申東雨)부구청장은 "결탁.금품수수 등 비리가 밝혀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통상적인 업무방식을 문제삼은 이유를 모르겠다" 며 "해당 직원을 징계할 계획은 아직 없다" 고 말했다.

입건된 직원 중 일부는 "경찰이 상류층 과소비에 대한 비난 여론을 업고 구청 직원들을 길들이면서 '한 건(件)' 하기 위해 무리하게 입건한 것" 이라며 "소송도 불사하겠다" 고 반발했다.

강남경찰서 이희성(李喜聲)수사과장은 "최근 공직자 비리를 집중 단속하라는 서울경찰청의 지침에 따라 수사에 들어간 것" 이라며 "통상적인 법 집행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 고 밝혔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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