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조운 '선죽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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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선죽교 선죽교러니 발 남짓한 돌다리야

실개천 여윈 물은 버들 잎에 덮였고나

오백년 이 저 세월이 예서지고 새다니

피니 돌무늬니 물어 무엇 하자느냐

돌이 모래되면 충신을 잊겠느냐

마음에 스며든 피야 오백년만 가겠니

포은(圃隱)만한 의열(義烈)로서 흘린 피가 저럴진대

나보기 전 일이야 내 모른다 하더라도

이마적 흘린 피들만 해도 발목지지 발목져

- 조운(曺雲.1900~?) '선죽교'

백년 전 이 땅에 와서 나라 잃은 어둠 속에서도 절창의 시조를 뽑아 올린 조운. 자유시의 거센 물결과 겨뤄 시조가 한 수 위인 것을 떨쳐보인 그의 작품들은 분단에 가리워져 반세기토록 빛을 보지 못했었다. 오늘 그의 고향 영광에서 시비가 서고 묻혀 있던 조운 문학의 금자탑을 다시 햇빛 속에 일으켜 세운단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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