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X판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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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날짜 중앙일보에는 '작가 헤밍웨이가 2차 세계대전 중 쿠바에서 미국의 정보원 노릇을 했다' 는 외신기사가 실렸다.

영국 신문이 미 공문서를 인용해 보도했지만, 헤밍웨이의 정보원 경력이 이번에 처음 드러난 건 아니다.

쿠바에 체류 중이던 1942년에 그는 "1천척의 독일 잠수함(U보트)이 쿠바 해역을 누비고 다닌다" 는 허황한 주장으로 미국 대사 브래든을 꼬드겼다.

헤밍웨이는 브래든으로부터 U보트 수색 비용으로 월 1천달러를 받아냈다. 그러나 그 돈으로 친구들과 바다낚시만 즐긴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철저한 행동주의 작가, 하드보일드 문체의 노벨상 수상자, 비극적인 엽총자살 등 우리가 아는 헤밍웨이와는 전혀 다른 면모다.

사실 헤밍웨이의 이면(裏面)은 허풍쟁이.거짓말쟁이에다 알콜중독자였다. 그는 1차대전 때 자원입대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은 시력이 나빠 입대를 거절당한 뒤 비전투요원으로 종군했었다.

2차대전에서는 "44년 파리에 최초로 입성했다" 고 말했으나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사생활에서도 네번째 아내 메리에 대해 친구들에게 "어젯밤 네 번이나 즐겁게 해줬지" 라고 뻐기곤 했는데, 헤밍웨이 사후 이 말을 들은 메리는 "정말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라며 한숨 쉬었다.

유명인의 추한 뒷모습은 이밖에도 많다.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칠순 나이에 자신의 공장에서 만든 고급시계를 팔기 위해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 2세에게 보낸 간드러진 편지를 보면 메스꺼울 정도다.

마르크스는 가정부 헬렌을 45년간이나 고용하면서 임금을 한푼도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헬렌이 자신의 아이를 낳자 혁명가.선각자 이미지가 훼손될까봐 감추기에 급급했다.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를 아프리카로 찾아가 만난 사람들은 그의 흑인 학대에 깜짝 놀랐다는 기록을 남겼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전혀 다른 모습에 서민들은 실망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들도 결국 범인(凡人)이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안그래도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상설공연장' 으로 알려진 국회에서 정쟁의 한 당사자인 여당대표가 스스로 '개판' 이라고 말한 데서는 안도감 아닌 위기감만 더한다.

따지고 보면 이전에는 신문들도 '개판' 을 '×판' 이라고 점잖게 표현했다. 자라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다들 너무 막가고 있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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