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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민의 줌인 맨해튼] 미 연말 반짝 경기가 뜨악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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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성탄절 다음날인 지난 26일 새벽. 미국 뉴욕 맨해튼 쇼핑거리 5번가의 삭스핍스(Saks Fifth) 백화점 앞은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오전 8시부터 딱 네 시간만 한 ‘애프터 크리스마스(After Christmas)’ 세일에 쇼핑객이 한꺼번에 몰린 때문이었다. 인기 품목은 문을 열기 무섭게 동이 났다.

삭스핍스는 유명 디자이너나 명품 브랜드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백화점이다. 이곳에 입점한 유일한 한국 명품 브랜드 MCM의 한영아 상무는 “예상 밖으로 쇼핑객이 많이 몰렸다”며 “내년엔 판매량을 늘리는 방안을 삭스핍스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부터 일제히 연말 세일에 돌입한 맨해튼의 메이시· 블루밍데일 백화점에도 쇼핑객이 넘쳤다. 일주일 전인 ‘수퍼 토요일(크리스마스 직전 토요일)’ 동부지역에 갑자기 몰아 닥친 한파로 크리스마스 대목을 놓친 소매업체의 표정이 지난 주말 모처럼 펴졌다. 세일 폭은 지난해보다 줄었지만 판매는 오히려 늘어 소매업체의 이익도 늘었다.

28일(현지시간) 발표된 실적도 이를 뒷받침했다. 마스터카드의 시장조사기관 스펜딩펄스에 따르면 지난달 1일~지난 24일 미국 소매판매는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6% 늘었다. 지난해는 2.3% 감소했었다. 지난해 각각 30%와 20%씩 줄었던 보석류와 럭셔리제품 판매가 올해 증가세로 돌아선 것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연말 ‘반짝’ 경기에 대한 평가는 아직 엇갈린다. 애프터 크리스마스 세일이 호조를 보인 건 소매업체가 벌인 상품권 판촉 덕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상품권은 언젠가 써야 하는데 꾹 참고 있던 소비자들이 올해 마지막 세일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는 얘기다. 이는 내년 초 매출 부진이란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소매업계는 더 큰 고민도 안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판이하게 달라진 시장 상황 때문이다. 과거엔 초대형 매장을 경쟁적으로 늘려야 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인터넷 쇼핑이 급속히 확산하면서 양상이 확 달라졌다. 텅텅 비기 시작한 매장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전자제품 전문몰 베스트바이는 매장 한 켠에 널찍한 신제품 체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월마트는 쇼핑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을 매장에서 찾아가면 추가 할인을 해주는 서비스도 도입했다. 금융위기 여파에다 가속도까지 붙은 인터넷 쇼핑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미국 소매업계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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