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 다양한 시각으로 살핀 '문화연구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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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어떤 이가 이미 적잖은 연구성과가 있는 데도 '○○○이란 무엇인가' 식의 원론적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나올 때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원론(혹은 총론)보다 각론 전파의 속도가 빠른 '주객전도 현상' 이 그 이유일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 원론의 순수성이 크게 훼손돼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자세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일 수도 있다.

최근 나온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는 앞에서 지적한 두가지 이유를 다 포괄한 입장에서 새롭게 조명받을 만한 책이다.

'신문방송학' 이라는 유행 학문의 한 연구방법론으로서 요즘 각광받고 있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를 초발심의 자세로 돌아가 배태과정부터 전개양상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살핀 책이기 때문이다.

원론형 타이틀을 달고 뒤늦게나마 국내 번역.소개하는 것은,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인 역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문화연구의 변모와 변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그 본질에 대한 확인" 에서다.

문화연구는 1960년대 말부터 영국 버밍엄대학의 '현대문화연구소' 에서 영국 사회의 개혁을 위해 현대문화와 하위문화의 역할과 기능 및 효과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이 초창기 연구 멤버인 토니 베넷이 설파했듯이 여기서 '문화' 는 실천성이 강조된 개념이었으며, 정치성.운동성.당파성.지향성이 이 연구방법론을 이끄는 네 바퀴였다.

당시 영국사회에 팽배하던 계급간의 충돌.남겨간의 갈등.백인과 유색인 사이의 알력.지배문화와 하위문화의 상충 등을 주요한 연구 테마로 다루면서 그 대안을 제시, 지식인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르크시즘 냄새가 풀풀나던 문화연구는 자본주의 토양의 호주와 미국 등으로 이식되면서 긍.부정의 변질과정을 겪기 시작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동성애.페미니즘.인종문제 등 문화연구의 폭은 넓어졌으나 정치성.운동성이 약화하면서 순수함을 잃기 시작했다.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의어로 통하면서 학문의 '패션화' 경향에 동조하는 세력까지 등장했다.

스튜어트 홀은 "문화는 '심미적 현상' 이 아니라 저항과 동의가 교차하고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가 표출되는 영역" 이라고 맞섰으나 대세는 겉잡을 수 없었다.

이번에 나온 '문화연구란 무엇인가?' 는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영국과 호주.미국의 저명한 문화연구가들이 쓴 22편의 논문을 7백여쪽의 두툼한 분량의 책으로 엮었다.

역자 혼자 번역에 매달리다 보니 출간이후 4년만에야 뒤늦게 국내에서 빛을 보게 돼 만시지탄의 아쉬움이 남는다.

국내에서는 90년대 초부터 비판커뮤니케이션과 기호학 열풍을 대체하는 방법론으로 각광받기 시작해 대중문화와 페미니즘 연구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용진(동국대).김훈순(이화여대).마동훈(전북대).정재철(동신대) 교수 등이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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