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에 관한 백과사전 '…은밀한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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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때로 제목이 모든 내용을 말해주기 때문에 설명이 별로 필요 없는 책이 있다.

'냄새의 문화적 과학적 연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그 전형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냄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알고 싶어하는 사실들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냄새에 관한 '작은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피트 브론이 동료 생물학자.심리학자의 도움을 얻어 저술한 이 책은 저자들의 이력이 말해주듯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서술이 평이해 부담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냄새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몇몇 대목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예컨대 청진기는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잘 '듣기'위해서가 아니라 의사들이 유해악취와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놀라움을 안겨준다.

또 세상에는 약 40만종에 달하는 냄새가 있으며, 아기들이 느끼는 첫 번째 감각은 자궁 안의 양수 냄새라는 것, 거대한 후각기관을 가진 고래의 후각 능력은 미미한 반면 생쥐의 후각 능력은 뛰어나다는 것 같은 사실은 많은 연상거리를 제공한다.

연어의 장대한 이동을 가능케 하는 것도 후각 때문이다. 흡연자들에 희소식이 하나 있다. 흡연을 하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질 수 있는데 그것은 니코틴에 후각기관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란다.

견딜 수 없는 악취에서부터 상쾌하고 기분좋은 향기에 이르기까지 냄새의 스펙트럼은 무척 다양하다.

그렇지만 냄새는 인간보다는 동물의 특성이라 여겨졌고 따라서 시각이나 청각 같은 다른 감각에 비해 그만큼 무시되고 천대받은 영역이기도 하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서양 문화는 "후각을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했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달콤한 냄새의 비누들.생리대.피부보호제.탈취제.향수 같은 상품을 둘러싼 광고 전쟁을 보면 냄새가 다시 한번 중요시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여자들이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뿌리는 것으로 여겨지는 향수는 애초엔 여자들의 배란을 감출 필요성 때문에 생겼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체취보다 더 개성적인 것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후각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언젠가 시간을 내 파트릭 쥐스킨트의 무서운 소설 '향수'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남진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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