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적 프로복서와 남한선수 링서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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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해방 이후 반세기 만에 남북간 화해와 해빙의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다음달 일본에서 북한 국적의 재일동포 프로복서가 남한 선수와 세계타이틀을 놓고 사각의 링에서 맞붙는다.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조인주(曺仁柱.30)는 다음달 27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타이틀전을 갖는다.

도전자는 현재 슈퍼플라이급 동양챔피언으로 21전18승(5KO)1무2패를 기록하고 있는 도쿠야마 마사요리(德山昌守.25). 하지만 그의 진짜 이름은 홍창수(洪昌守)며 국적은 북한이다. 할아버지가 해방 전 고향 경남을 떠나 일본에 정착한 재일교포 3세다.

洪은 부모의 영향으로 조총련계 고교를 졸업한 뒤 1994년 프로로 데뷔했다. 당시 홍창수란 본명으로 활동하려고 했지만 일본권투위원회로부터 등록을 거부당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을 바꿔 등록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인으로서 링에 올라라" 는 귀화 요구를 끝내 뿌리쳤다. 언론 인터뷰 등에서 재일동포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국적을 밝히면 차별은 물론 선수생활에 어려움도 있지만 조선인이란 사실은 양보할 수 없다" 고 말한다. 신념이 난관을 이겨내게 했다.

그는 또 "링에선 나 자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만 이기면 동포들에게 용기를 준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 고 말했다.

일단 링 위에 서면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 쉴틈없이 주먹을 날려야 하는 것이 권투시합의 생리다. 그렇다고 해도 링 밖에선 대결보다 화해의 분위기가 넘쳐날 것 같다. 경기장엔 남북 화해의 상징인 한반도기가 내걸릴 예정이다.

홍창수가 만든 경기 포스터는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洪은 아버지의 권유로 포스터 아랫부분에 한국어와 일본어로 '링의 세계엔 38선이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고 쓴 뒤 녹색의 한반도 지도를 그려넣었다.

洪은 무명시절부터 '코리아는 하나' 라고 새긴 트렁크를 입고 링에 올라 눈길을 모아왔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에도 '조국통일' 이란 글자를 새긴 가운을 입고 들어간다. 일본 관중을 대상으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경기는 챔피언 조인주의 프로모터인 이거성(李巨星)씨가 洪의 도전을 받아들여 성사됐다. 李씨는 "다른 선수로부터도 도전장을 받았지만 이왕이면 같은 동포와 멋진 승부를 벌이고 싶어 홍창수를 도전자로 골랐다" 고 말했다.

일본 언론들도 두 사람의 '남북대결' 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사회면에 홍창수의 경력과 포스터 등을 겻들여 이번 경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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