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삼성화재는 가빈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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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가빈화재.’ 프로배구 남자부에서 독주 체제를 갖춘 삼성화재에 대해 경쟁팀들이 붙인 별명이다.

잘나가는 삼성에 대한 시기 어린 시선이 반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삼성화재의 가빈 슈미트(23·207cm)는 올 시즌 팀 공격의 절반(공격점유율 49.1%)을 도맡으며 득점 선두(426점)에 올랐다. 득점 2위 박철우(24·현대캐피탈)와의 격차는 무려 162점. 지난 9일 LIG전에서는 45점을 꽂아 넣으며 V리그 경기당 최다득점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역대 경기당 최다득점 부문에 유독 삼성화재 소속이 많다는 점이다. 상위 7개 중 6개가 삼성화재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배구팬들은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는 삼성화재의 안목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삼성화재에 와서 외국인 선수의 기량이 일취월장하는 것인지” 궁금해 한다.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안젤코나 가빈 모두 국내 선수에 비해 기량이 월등한 편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 테크닉은 보지 않는다. 힘과 높이를 눈여겨 본다”고 선발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이어 “삼성화재는 가빈만의 팀이 아니다. 가빈의 많은 득점은 최태웅의 토스 덕분이고, 최태웅의 안정된 토스는 여오현과 석진욱의 몸을 날린 수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미 수비 조직력은 국내 최고인 만큼 외국인 선수가 착실히 포인트만 쌓아 주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삼성화재의 배구를 곱지 않게 보는 이들도 적잖다. 대부분 경쟁팀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아무리 알고도 당하는 것이 배구라지만 외국인 선수에게 지나치게 편중되면 재미가 떨어진다”고 지적을 한다. 이에 대해 삼성화재 최태웅(33)은 “그런 비판은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삼성화재만의 배구를 할 뿐이다”고 했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팀들의 외국인 선수 비중도 낮지 않다. 올시즌 1라운드 전승 돌풍을 일으켰던 LIG손해보험은 공격점유율 28.6%를 기록하던 피라타(29)가 부상을 당한 뒤 2연패 중이다. 과거 현대캐피탈이 두 시즌 연속 챔피언에 오를 때도 미국 대표팀 출신의 숀 루니(27)가 공수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결국 팀 전력은 어떤 외국인 선수를 데려다 기존 구성원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내느냐가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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