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외고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토론을 지켜보고 있다. 김형수 기자
지난 9월 4일 오후 11시 한나라당 연찬회가 열린 천안 재능교육연수원 근처의 한 순대집에선 연찬회 뒤풀이 자리가 마련됐다.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등 10여 명의 의원이 모였다.
순댓국과 두부김치를 안주로 술잔이 돌았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당시 재·보선 출마를 위해 박희태 대표가 사퇴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정 최고위원의 대표직 승계가 기정사실화됐다. 정 최고위원은 “축하한다”는 인사말도 받았다.
그런 분위기여서 참석자들은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고 노래도 한 자락씩 불렀다고 한다. 정 최고위원도 가락을 뽐냈다. 정 최고위원의 노래가 끝날 때쯤 안상수 원내대표가 일어났다. 그러더니 정 최고위원을 향해 “노래를 그거밖에 못 하시나”라며 “내가 저 분을 최고위원이라고 모셨는데 또 대표로 모셔야 하나”라고 했다. 면전에서 이 말을 들은 정 최고위원의 얼굴은 흙빛이 됐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어떻게 대표가 될 사람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며 “안 원내대표의 말투는 정 대표를 무시하는 투였다”고 말했다.
그런 두 사람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정 최고위원이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10월 12일 안 원내대표는 SBS 라디오 ‘이승열의 전망대’에 출연해 “내년 2월에 전당대회를 하면 한나라당 지지도가 올라간다”며 “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받는 대표를 뽑아 체제를 정비해 지방선거를 치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안 원내대표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의 정몽준 체제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대놓고 한 것이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안 원내대표는 다음 날 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한나라당은 정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며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분란은 가시지 않았다, 정 대표는 11월 2일 세종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가칭 ‘세종시 여론 수렴 특위’를 제안했다. 하지만 안 원내대표는 다음 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세종시 문제는 정부 대안이 나올 때까지 논쟁을 중단하자”며 정반대 얘기를 했다. 이에 정 대표도 “사전에 보고도 안 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 대표와 안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당 지도부와 함께 ‘화합주’를 돌리며 그간의 앙금을 털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정치적 이해가 술 한잔으로 풀릴지는 의문이다.
鄭-安 최근 화합주 나누긴 했지만
안상수 원내대표(왼쪽)와 장광근 사무총장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안 원내대표는 친이계 중진이다. 청와대와 핫라인을 두고 현안을 조율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런 그는 정 대표를 처음부터 껄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한 당 관계자는 “안 원내대표는 정 대표가 2002년 노무현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이 정권을 가져오지 못하게 된 점을 뼛속 깊이 아파하는 사람이어서 갈등의 골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選數)는 정 대표가 앞서지만 나이는 안 원내대표가 다섯 살 위다. 게다가 정 대표는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정 대표가 끼어들었다는 생각을 왜 안 하겠나. 그러니 정 대표를 탐탁지 않게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분 없는 ‘승계 대표’의 한계
정 대표는 안 원내대표에 대해 무대응 전략을 구사했지만 사석에선 ‘나를 인정하지 않는 안 원내대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안 원내대표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의식해 업무를 통해 뭔가를 보여 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10·28 재·보선 때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자지 않고 열심히 뛴 게 그 예다. 그는 또 스킨십을 늘리기 위해 많은 의원·당직자와 어울렸다. 하지만 재·보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하자 그의 노력은 빛을 바랬다. 세(勢)도 붙지 않았다. 당내에 정 대표계라고 할 수 있는 의원은 3~4명이 고작이다. 조해진 대변인은 “정 대표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당내 역학 구도상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장광근 사무총장과도 사이가 나빠 당 대표로서 안착이 더 쉽지 않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정 대표 측은 장 총장에 대해 “당 대표를 대표로 여기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다. 갈등은 10·28 재·보선 공천 때 시작됐다고 한다. 수도권 한 후보 공천을 놓고 최고위원단과 장 총장의 견해가 갈리면서다. 결국 장 총장의 뜻이 관철됐다. 호남 지역 사고지구당의 당원협의회장 선임을 놓고도 정 대표와 장 총장이 충돌했다. 정 대표가 자신의 측근을 당원협의회장으로 밀었지만 장 총장의 벽에 막혔다.
최근에는 공개적으로 두 사람의 의견이 갈렸다. 정 대표가 지난 16일 예산안 문제 해결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함께 만나 대화로 정국을 풀자”는 3자회담을 제의했다. 그러자 장 총장은 18일 “원내대표의 정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어떤 행보도 자제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한 당직자는 “장 총장이 대표에게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아 정 대표가 당 현안을 언론을 통해 아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한 중진 의원은 “당의 모양새가 이대로 가선 안 된다”며 “정 대표가 총장 자리를 놓고 청와대와 담판을 벌여야 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선 나온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장 총장은 이렇게 해명했다. “3자회담 제의와 관련해 정 대표를 공박한 게 아니다. 3자 회동의 후유증을 없애기 위해 조율된 의견을 갖고 회담에 나가야 회담 자리가 야당 공세의 장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방패막을 친 것으로 정 대표에게도 비공개회의에서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협위원장 선임과 재·보선 공천에 대해서는 “당협위원장 건은 이미 조직 강화 특위에서 결론이 난 상황이었고 공천 건도 이미 정해진 대로 했다”며 “그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비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를 수 있겠다”고 했다. “총장이 고분고분하면 좋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총장이 무조건 집사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도 했다.
“鄭 대표의 노력, 때 되면 성과 낼 것”
정 대표의 당내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건 현실이다. 당내에선 여전히 조기 전당대회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3자 회동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정 대표가 4대 강 사업에 대해 회의적’(22일 경기도 남양주시 당원 교육에서)이란 보도까지 나오면서 그의 처지는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정 대표가 당 대표가 된 뒤 세종시 문제든, 예산안 문제든 당 대표로서 해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는 있지만 별다른 묘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그에겐 부담이다. 당헌 당규상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의 최고 권한을 갖도록 돼 있어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초등학교 동창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사이도 원만해 보이지 않는다.
정 대표가 당을 이끈 지 이제 4개월이다. 최종 평가를 내리기는 아직 이른 시점인 것이다. 조윤선 대변인은 “정 대표가 가진 당내 역학구도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10·28 재·보선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당을 위해 헌신한 모습이 신선함을 주고 있고, 정 대표가 강조하는 포용 정치와 정당의 외연 확대 노력이 때가 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