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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규 스타일’ 검찰에 새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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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7일 김준규(사진) 검찰총장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8차선 도로 위에 세워진 육교(누에다리)를 건넜다.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일부 대검 참모는 이날 행사를 연기하자고 건의했다. “여야 정치인 수사가 진행 중인데,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에 가면 정치적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김 총장은 “예정된 일정을 미루는 게 더 이상하다”며 수행 비서만 데리고 대검 청사를 나선 것이다.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정치인 수사에 대해 김 총장이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검찰은 현재 한명숙 전 국무총리 기소로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맞닥뜨려 있다. 이처럼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김 총장은 “정치인 수사도 일반 수사와 다를 게 없다. 통상적인 수사 절차에 따라 결론을 내리면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엔 “김 총장이 ‘성역 없이 수사한다’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를 바로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성역 없이’라는 것”이라며 “원칙대로 처리하는 것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반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 중심으로 접근하자”는 김 총장의 방침은 검찰 내부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대검 관계자들이 말하는 김 총장의 스타일은 허례허식(虛禮虛飾)을 싫어하고 참신한 발상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는 간부회의에서 “보고는 서류 대신 말로 하라”는 원칙을 강조해왔다. 처음엔 ‘너무 독선적인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토론 문화’가 정착돼가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보고 시간이 짧아진 대신 토론이 길어졌다. 아이디어를 낸 평검사가 간부 회의에 참석해 직접 발표하기도 한다. 내년부터는 새로 도입되는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전국 검찰청 직원들과 실시간으로 토론을 할 계획이다.

“구속에 연연하지 말고 유죄 판결을 받는 데 주력하자”는 김 총장의 ‘실용주의’는 일선 수사에 반영되고 있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지난달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4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노재영 군포시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곧바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의 총장들과 스타일이 달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검찰에 새 바람을 몰고 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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