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낳는 ‘애국자’에 상금 주는 기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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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천호식품 김영식(59·사진) 회장은 올해 2월 전 국민을 상대로 출산장려금을 내놓겠다고 했다. 방식이 독특하다. 누구든 김 회장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뚝심카페(cafe.daum.net/kys1005)’에 등록한 뒤 셋째를 임신·출산하면 선착순으로 115명에게 무조건 매달 20만원씩 모두 200만원을 주겠다는 거다.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 주민에게 출산장려금을 주는 경우는 있어도 기업, 그것도 중소기업이 이런 식의 출산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카페를 개설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1000명 넘는 사람이 등록했다. 김 회장은 약속대로 이들 가운데 셋째를 출산한 산모 12명에게 출산장려금을 전했다.

그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이 드니 나라 걱정이 돼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소 맥 빠지는 대답이었지만 진심인 것 같았다. 김 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 등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기적을 이뤄낸 국민 아닙니까. 30~40년 뒤면 사람이 없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침몰하게 생겼다고들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돈 가진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돈을 내놓는 일 아니겠어요? 내가 하면 누가 또 따라 하지 않겠습니까.”

천호식품은 저출산 대책 모범 기업이다. 2005년부터 첫째와 둘째를 출산하면 각 100만원을 주고, 셋째를 낳으면 일시금으로 500만원에다 매달 양육비 30만원을 24개월 동안 준다. 셋째까지 낳으면 총 1420만원을 받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양육비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자녀 학자금을 대학원까지 전액 대주고, 내년부터는 유치원 비용도 준다. 파격적인 출산장려금으로 화제를 모은 서울 강남구는 둘째와 셋째를 출산하면 각각 100만원, 500만원을 준다. 이에 비하면 천호식품의 출산대책은 중소기업치고는 큰 파격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뒤 여직원 1명이 세 자녀 출산 장려금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전 국민에게 출산장려금을 주겠다고 나선 것은 이런 회사의 정책이 밑거름이 됐다.

김 회장은 “직원들(300여 명)만 이런 혜택을 받는 게 (국민에게) 미안하더라”고 했다. 그렇다고 회사의 자금을 꺼내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지난해 출간한 『10미터만 더 뛰어봐!』의 인세와 강연료 수입 2억3000만원을 내놓았다. 이 돈을 쌈짓돈 삼아 기금을 조성했다. 이 책은 외환위기로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지금은 부산 지역 고액납세자 상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재기한 김 회장의 경영철학을 담은 것이다. 20만 권 넘게 팔렸다. 김 회장은 기금을 늘리기 위해 사재도 내놓을 계획이다.

부산에 있는 천호식품은 통마늘진액 등 160여 가지의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연 매출 800억원 규모의 중견업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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