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예견 ‘족집게 학자’ 이번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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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실러(63·사진) 예일대 교수(경제학·재무)가 재정적자 부담을 줄이고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을 완화하는 해법으로 국내총생산(GDP)과 연계된 국채를 발행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실러 교수는 27일 ‘국가경제의 성장을 나누는 길(A way to share in a nation’s growth)’이라는 제목의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GDP로 표시된 국가의 이익(profit)을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신개념의 국채를 발행하자고 주장했다.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빚을 내거나(debt) 주식(equity)을 발행하는 것처럼 국가도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주식 성격의 채권을 발행하자는 것이다.

실러 교수가 ‘트릴(trill·trillion)’이라고 명명한 이 채권은 말 그대로 해당 국가 GDP의 1조(兆)분의 1에 해당한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트릴은 현지 통화로 발행되며 상환기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영구채다. 매 분기 채권이자는 해당 분기의 명목 GDP의 1조분의 1과 정확하게 일치시킨다. 예를 들어 캐나다가 올해 트릴을 발행한다면 올해 현금 흐름의 1조분의 1인 1.5캐나다달러를 이자로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의 가격은 아마 150캐나다달러 수준으로 높게 형성될 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트릴은 올해 14달러 수준의 이자를 지급할 수 있을 것이고, 채권가격은 1400달러 이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 트릴을 발행하면 기존 국채에만 의존하는 것에 비해 정부의 재정 부담이 한결 줄어들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 예상 순이익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처럼 트릴 가격도 발행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에 따라 달라진다. 실러 교수는 “트릴은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실러 교수는 1993년 출판한 『매크로 마켓』에서 이 같은 개념의 채권 발행을 처음 주장했었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을 비롯해 학계에서도 실러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서경호 기자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1946년 미국 미시간 출생.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36세 때 예일대 교수가 됐다.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주택가격지수인 케이스-실러 지수를 공동 개발했 다. 2000년 저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서 인터넷 거품 붕괴와 이로 인한 증시 폭락을 예견했고, 2006년을 전후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주택시장의 붕괴를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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