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의 조건, 절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6호 34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진시황 이래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꿈이다. 그러나 얼핏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현실화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난 19일 미국 버밍햄의 앨라배마 대학교(이하 UAB) 연구진들은 포도당의 섭취 제한이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고 발표했다. 그간 적게 먹는 것이 수명 연장에 도움을 준다는 발표는 계속 있어 왔다. 대표적인 장수촌으로 손꼽히는 일본의 오키나와 지방의 경우, 장수하는 노인들은 하루 평균 남성 1400㎉, 여성 1100㎉ 정도를 섭취한다. 보통 성인의 1일 권장 열량이 남성 2000㎉, 여성 1800㎉인 것에 비하면 30% 이상 적은 섭취량이다. 그뿐만 아니라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도 평균 섭취량의 3분의 2만 먹인 쥐의 수명이 보통 쥐보다 20% 이상 늘어난다. 이처럼 소식과 장수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고는 이미 예전부터 알려졌다.

지금까지 소식과 장수의 연관성은 주로 활성산소에 의한 산화 스트레스 감소로 이해되어 왔다. 인간의 몸에서 포도당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산소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활성산소가 발생된다. 활성산소는 산화력이 매우 높아 단백질, 지방산, DNA 등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결합해 산화 및 손상시키는 물질이다. 물론 인체 내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항산화효소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활성산소의 양이 늘어나면 미처 항산화효소가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세포는 활성산소의 공격에 노출되게 된다. 이는 자동차에 아무리 효과 좋은 매연 저감장치를 부착하더라도, 운행 거리가 길어지면 그만큼 대기오염물질의 발생량은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지금까지 소식과 장수의 연관성은 많이 먹을수록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세포에 악영향을 주는 부산물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세포가 받는 스트레스의 증가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UAB 연구진의 보고는 열량 섭취 제한은 세포가 지닌 유전자의 발현에도 영향을 미쳐 수명을 조절한다는 사실까지 추가적으로 제시했다.

UAB 연구진은 정상적인 폐세포와 전암단계(암으로 변화되기 직전의 세포 상태)의 폐세포를 인공배양한 뒤,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각각 일반적 수준의 포도당이 든 배양액과 낮은 수준의 포도당이 든 배양액을 이용해 배양했다. 이 경우 정상적인 세포는 포도당을 적게 처리한 그룹의 수명이 훨씬 더 길었으나, 전암단계 세포의 경우 오히려 포도당을 적게 처리한 그룹의 사멸이 빨리 진행되는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포도당의 섭취를 억제할 경우 정상적인 세포에서는 세포 증식과 관련된 유전자가 활성화되고 세포 사멸과 관련된 유전자는 감소되어 세포의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가 나타난 반면, 전암단계의 세포에서는 세포 증식 유전자는 억제되고 세포 사멸 유전자는 증가되어 오히려 세포 사멸이 유도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어떤 경로로 인해 정상세포와 전암단계 세포에서 이토록 상반된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명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이 연구를 통해 적게 먹는 것이 유전자적 수준에서까지 영향을 미침이 알려진 것이다.

소식과 장수의 연관성이 유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는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시기가 되면 많은 이들이 지난 세월 저질렀던 무절제와 과욕을 반성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무절제한 생활은 몸을 망치고 과욕은 삶은 망친다는 건 하나의 진리다. 이는 애초에 인간의 생물학적 기반 자체가 절제와 자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욕심을 덜어내고 조금 덜 가짐이 외려 몸을 지켜주고 삶을 평온케 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는 우리네 유전자에조차 아로새겨진 숙명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