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서울시향 오디션,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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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고육지책인가. 아니면 계약제와 정기 오디션 정착을 통한 단계적 개혁의 첫 행보인가.

6일 발표된 서울시향(음악고문 정명훈)의 오디션 합격자 명단을 보면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겠다던 서울시의 당초 의지는 제대로 관철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반쪽의 성공'이라고나 할까.

정원 106명을 선발하는 이번 오디션에는 687명이 응시해 82명이 최종 선발됐다. 그 가운데 74%가 기존 단원(61명)이다. 기존 단원 96명 중 명예퇴직을 신청한 14명과 오디션을 포기한 3명을 제외한 79명이 오디션에 참가해 다섯 명 중 네 명꼴로 합격한 것이다. 이 정도의 합격률이라면 서울시가 그동안 "서울시향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온 '대폭 물갈이'와는 거리가 멀다.

권영규 서울시 문화국장은 "응시자가 많았지만 서울시향의 기존 단원보다 월등히 높은 기량의 연주자는 별로 없었다"며 "기존 단원들이 오디션을 거부하면서 가두 시위 연주까지 하는 분위기에서 전면 물갈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해명했다.

6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신입 단원의 비율이 적은 배경에는 오디션을 앞두고 '기존 단원을 우대한다더라'는 소문이 퍼진 탓도 있다. 실제로 기존 단원과 외부 응시자의 지정곡은 달랐다. 내부 오디션에 들러리나 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우수한 연주자들이 응시를 기피했던 것이다. '정명훈 카드'는 물론 전용 콘서트홀 신축과 국내 최고 대우 보장도 강력한 유인책이 되지는 못했다. 교향악단의 얼굴인 악장(樂長)은 물론 수석 주자 11명, 부수석 6명, 단원 6명은 선발하지 못해 추가 오디션이 불가피하다.

이번 오디션은 기존 단원에게 '회생'의 기회를 주면서 동시에'철밥통'을 깨뜨리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젊은 피 수혈'에 실패한 것은 큰 흠으로 남게 됐다. 애초부터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다가 발목을 잡힌 형국이다. 악장이나 수석 주자에게까지 1년짜리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한 것은 다소 심했다는 지적도 많다. 단원에 따라 1년에서 5년까지 계약 기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신축성을 발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울시 문화국의 말마따나 수석급 주자들을 초빙 형식으로 충원한다 쳐도 1년짜리에 누가 응해 줄 것인가.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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