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의 딱한 국회여, 미국의 의회정치를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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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미국의 건강보험개혁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지난달 7일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통과함으로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공약인 건강보험 개혁이 실현될 수 있게 됐다.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 법안을 놓고 설득·토론·협상 과정을 거쳐 표결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전 과정은 우리의 난장판 국회와 너무나 대조적이라 부럽기 그지없다. 크리스마스인 어제도 우리 국회는 야당에 의해 예결위 회의장이 점거됐고, 내년 예산안 심의는 마비됐다.

첫째, 이번에 보여준 미국의 의회정치에서 특히 부러운 장면은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회 설득이다. 하원의 건보개혁법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6일 오바마 대통령은 일요일이었지만 의회를 찾았다. 상원 재무위 표결 때는 당시 공화당 의원으론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올림피아 스노 의원을 직접 세 번을 만나고,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당론에 맞서 건보개혁안을 반대해온 민주당 벤 넬슨 의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민주당 지도부와 백악관 참모들은 13시간에 걸쳐 협상을 벌였다. 예산안은 국회에서 처리할 문제라는 청와대의 태도와는 다르다.

두 번째는 크로스보팅이다. 공화당 스노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는 바람에 상원 재무위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원 표결에서는 공화당 조셉 가우 의원이 찬성표를 던져 판세를 바꿀 수 있었다. 영산강은 살려야 하지만 4대 강은 안 된다는 한국의 의원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당론에만 끌려 다니지 않기에 돌격대가 없고, 출구 없는 대치상황도 피할 수 있다.

셋째, 물리력을 이용한 반대는 상상할 수도 없다. 합리적인 토론으로 정책대결을 펼칠 뿐이다. 16일 상원 토론에서 무소속의 버니 샌더스 의원은 의사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서기에게 2074쪽이나 되는 건보개혁안 전문을 낭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링을 종결하는 표결이 가결된 뒤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해머와 전기톱, 농성과 몸싸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넷째, 장내외를 혼동하는 일이 없다. 지난달 5일 의사당 앞에서 수천 명이 건보개혁 반대 시위를 벌였다. 공화당 상원의원 40명에게도 참석을 요구했지만 한 명도 응하지 않았다. 장외의 열기를 의정활동에 반영할 수는 있어도 의사당을 버리고 장외로 뛰쳐나가 직접 시위를 벌이는 것은 반의회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섯째,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이다. 공화당은 아직도 “다수 미국인이 원하지 않는 법안”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투표 결과에 대해서는 “받아들인다”고 했다. 상하원 단일안 마련 과정 등 합법적 절차를 통해 당론을 반영하려 할 뿐이다. 유권자들도 반의회적 돌출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합법적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지만 따져 투표에 반영할 뿐이다.

그뿐 아니다. 미국 의원들은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밤새워 일한다. 24일 표결하기까지 상원은 하루도 쉬지 않고 25일간 회의를 계속했다. 국민의 혈세를 어떻게 쓸지를 따지는 예산안을 해가 다 가도록 손도 대지 않고 있는 무책임한 의원들을 뽑아놓은 우리로서는 너무나 부러운 선진국 의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