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공연장 재정자립도 벗겨보니 '숫자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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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예술의전당.정동극장 등 주요 공연장들이 상업성 높은 대관 공연을 공동으로 주최하면서 '숫자 놀음' 을 별여 빈축을 사고 있다.

이들은 명목상 공연 제작비 일부를 투자하고 이를 입장 수입으로 돌려받는다. 이럴 경우 지출 대 수입의 비율, 즉 재정자립도의 수치는 부풀려진다. 대관료 인상과 같은 방법을 함께 동원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심지어 공연수익에 대한 추가 지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공동주최에서 공연장이 투자하는 '지분' 이란 대관료를 나중에 받는 것 뿐이지만 장부 상으로는 지출과 수입이 발생한다. 결국 이들 공연장이 발표하는 기획공연 비율이나 재정자립도에는 '거품' 이 끼게 마련이다.

공동 주최도 상업적 흥행성이 높은 공연만 고른다. 굳이 공연장이 '공동 주최' 라는 타이틀로 지원사격에 나서지 않더라도 충분히 관객이 몰리는 공연들이다. 투자 지분, 결국 외상 지원한 대관료 회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오는 2011년까지 재정자립도를 80%까지 높인다는 계획 아래 대관료를 연간 7~10%씩 인상하는 한편 이와는 별도로 공연의 흥행에 따라 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추가로 징수하는 차등 대관료 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다.

지난해 65.4%의 재정자립도를 기록한 정동극장은 순수 대관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공연을 외부단체와 공동 제작했다. 15억1천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15억8천만원의 공연수입을 올렸다. 돈이 나갔다가 들어온 것 뿐이다.

문예회관은 첫 기획공연으로 지난해 극단 자유의 '페드라' (소극장), 극단신시의 뮤지컬 '갬블러' (대극장)를 공동 주최했다.

제작비로 1억9백20만8천원을 지출했다가 매표 수입과 대관료 명목으로 1억1천6백70만9천원을 환수했다.

문예회관 한기천 관장은 "13억원을 공연비로 지출하고 그대로 환수하기만 해도 재정자립도가 63%로 껑충 뛰어 오른다" 라고 말한다.

지난해 가장 높은 재정자립도(72.2%)를 기록한 예술의전당도 올해 상반기만 뮤지컬 '렌트' (신시뮤지컬컴퍼니), 베를린필 12 첼리스트(MBC), '어린이 연극 '호랑이 이야기' (극단 사다리), '어린이 뮤지컬 '피노키오' (SBS), 스피리트 오브 댄스(광연제 PR), ' 세계어린이합창제(월드비전.파홀로), ' 세계춤 2000서울(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등 8건을 공동 주최했다.

지난 1월 25일간 SBS가 상연한 악극 '비내리는 고모령' 은 대관 심사에서 탈락했다가 '울며 겨자먹기' 로 공동 주최를 제안해 공연이 성사됐다.

예술의전당은 대관료 1억원(통상 금액은 1억4천5백만원)외에 입장수입의 25%(2억5천만원)을 챙겼다. 무대 스태프와 홍보 마케팅 인력을 제공했다는 이유다.

공연장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려면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는 직접 제작 비율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수준높은 작품을 제작하면 할수록 적자 폭은 커지기 마련이라며 상업성 높은 공동기획을 남발하고 있다.

결국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것은 자체의 기획기능을 제대로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올린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공연장 지원을 늘이기 보다 경제논리를 앞세워 수익을 내라는 정부당국의 무리한 요구가 빚어낸 결과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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