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93년 지하 핵실험 준비 끝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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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23일 "북한이 1993년 이미 지하 핵실험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황씨는 국회 한민족통일연구회(회장 임인배 한나라당 의원) 정책토론회에서 "내가 국제비서를 맡고 있을 때 소련 정부 관계자에게서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직접 받았으며, 이 내용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하자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황씨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핵무기 개발 사실이 중국과 소련에 알려지는 것을 매우 꺼렸으며, 96년엔 외국 정부와 계약을 하고 농축 우라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김 위원장은 주요 정책에 대해선 동맹국인 중국.러시아의 얘기도 듣지 않는다"면서 "개혁.개방이나 핵무기 정책과 관련해 중국이 김 위원장에게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은 0.01%"라고 말했다.

김정일 체제에 대해서는 김정일 사후엔 개혁.개방 정책이 도입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씨는 "북한 정권 간부의 99%, 김 위원장의 최측근까지 개혁.개방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다만 김 위원장 앞에서 말을 못할 뿐"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사망한 뒤 남측이 첫 1~2년간 충분한 식량 지원을 하고, 10년간 꾸준히 투자와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게 그가 주장하는 통일 프로세스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정치.경제적 격차를 확연히 늘려놔야 하는데도 여기 사람들은 북핵이니 국가보안법.과거사.수도 이전 같은 부수적인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하다가는 중국과 러시아가 세를 확대하는 동안 미국이 남한에서 떠나고, 이런 상황에서 남북연방제가 도입될 경우 우리가 총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우려 섞인 경고다.

황씨는 "지금 급선무는 친북.반미세력의 성장을 막고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강화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면서 "북한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보안법의 폐지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과거사 논쟁에 대해서는 "누구 아들인지, 딸인지가 뭐가 중요하냐"고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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