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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구원투수’ 기관투자가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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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그동안 기관이 주식을 팔아치운 건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줄곧 돈이 빠져나가다 보니, 주가가 오를 때도 기관은 주식을 팔아 환매대금을 마련하기에 바빴다. 올 들어 주식형펀드에서 빠져나간 돈은 7조원에 육박한다.

이달에도 주식형펀드에서 자금이 빠지는 건 마찬가지다. 21일까지 순유출금액만 8955억원에 달한다. 주머니에 실탄이 없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데 기관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건 왜일까.

시장에선 이를 투신권이 연말 수익률 관리에 나섰다고 본다. 이른바 ‘윈도 드레싱’ 효과다. 펀드의 분기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분기 말에 좋은 주식을 사들이거나 안 좋은 주식을 팔아치우는 걸 가리킨다. 매장에서 상품 판매를 위해 진열장을 멋지게 꾸미는 것에 빗댄 표현이다.

윈도 드레싱은 매 분기 말에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 해의 투자 성적표가 정해지는 연말이면 더 뚜렷해진다. 국내 증시에선 과거에도 12월 중순 이후엔 기관의 순매수 금액이 가파르게 늘곤 했다. 한국투자증권 박가영 연구원은 “투신권이 수익률을 관리하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주식을 담으면서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다”며 “며칠 안 남은 연말까지 이런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인덱스펀드도 주식 담기에 가세했다. 주식 현물과 선물을 모두 들고 있는 인덱스펀드는 연말이 되면 현물 비중을 늘린다. 현물로 갖고 있어야 배당 받을 권리를 얻기 때문이다. 인덱스펀드가 선물을 팔고 현물을 사면 프로그램 매매를 통한 순매수세가 들어온다. 이달 들어 차익 프로그램의 순매수 금액이 8017억원에 달하는 것도 인덱스펀드 효과로 풀이된다.

내내 주식을 팔아치웠던 연기금의 태도도 지난달 말부터 조금 달라졌다. 코스피시장에선 여전히 ‘팔자’이지만 코스닥에선 주식을 담고 있다. 연기금이 녹색산업에 투자하면 자산운용평가 때 가산점을 준다는 정부의 정책이 투자를 끌어냈다.

문제는 기관의 순매수가 불과 4거래일밖에 남지 않은 연말 동안만 반짝하고 말지, 아니면 내년에도 좀 더 이어질지다. 아직까진 내년엔 기관의 매수세가 서서히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 섞인 전망이 우세한 편이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연구원은 “올해 기관의 발목을 잡았던 펀드 환매가 내년부터는 잦아들 것”이라며 “내년 1분기부터는 기관도 주식을 담을 여력이 다시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 역시 내년엔 매수세에 가담할 전망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내년에 국내 주식투자 규모를 올해 34조원에서 5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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