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허준보다 인간적 허준이 더 매력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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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허준' 이 끝나는 날도 그는 바빴다. 여의도 한 스튜디오에서 공익광고 '사랑의 우유 나누기'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낙농육우협회에서 불우한 어린이를 돕는 취지로 만드는 거라기에 무료출연하게 됐습니다. 제가 원래 어린이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허준' 을 연기할 때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저를 붙잡아준 것은 네살바기 아들 동혁이의 초롱한 눈망울이었습니다. "

'국민드라마 허준' 의 주인공 전광렬은 이같은 사람 사랑에 바탕을 둔 연기를 인기의 비결로 꼽는다.

"강한 허준이 아니라 인간적인 허준을 표현하려 애썼습니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 '삼탕' 이란 말이 마음에 걸려 이를 악물었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성공은 저뿐 아니라 연출자.작가.동료 연기자.스대프등 모든 제작진의 땀 덕분이지요. "

그는 건달, 시정잡배, 사랑에 빠져 고뇌하는 남자, 성공을 위해 달리는 투사, 냉혹한 판단을 해야하는 파워 엘리트 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지닌 '허준' 을 64회 내내 끊임없이 표현해야 했다. 생의 모든 경험을 총동원했다.

대학(음대)들어간지 1년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뛰어든 탤런트 생활, 연기자로 인정못받고 겉돌던 10년간, 담배 살 돈도 없을만큼 곤궁했던 사업 시절, 재기 등등…. 그러나 예정보다 24회나 늘어난 극 속에서 모두 소진돼버렸다. 체력 소진까지 겹쳐 링거를 맞아가며 연기하는 등 막판에는 오기 하나로 버텨야 했다.

지난 27일 '장엄한 죽음' 을 끝으로 촬영이 끝나는 순간 그는 극도의 피곤함 속에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몸은 정말 견딜 수 없었어요. 특히 촬영 막바지였던 지난주엔 온몸에 식은 땀이 나고 서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어서 병원에 가려고했는데 의료계 폐업이 터진 겁니다. 꼼짝없이 약만 먹고 버텼죠. "

그는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 를 한달, 아니 1년에 한번이라도 되뇌어본다면 이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며 "저 역시 과거 아들이 아팠을때 응급실에 달려갔지만 진료를 제대로 못받고 발만 구른 경험이 있다" 고 말했다.

"의료폐업 사태가 나기 직전 의사협회와 약사협회에서 경쟁적으로 저에게 지원 연설을 부탁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는 에피소드도 전해준다.

그러고 보니 4.13총선 당시에도 수백명 후보가 "내가 허준" 이라고 주장했고 정당마다 그에게 지원 연설을 부탁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이 역시 거절했다.

'출마' 권유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랬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물론 전혀 생각없다" 고 잘라 말한다.

'허준' 을 끝낸 전광렬에게 밀려드는 출연제의와 CF출연요청, 천정부지로 뛴 개런티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일단 MBC가 '허준' 의 전 스태프에게 1억원을 들여 보내주는 태국 푸켓행 5박6일 휴가를 다녀온 뒤 다시 부인.동혁이와 함께 중국.일본등을 돌며 푹 쉬고 다음을 구상할 생각이다.

"숙원이었던 영화에 출연할 계획이에요. 시나리오를 여러편 검토중인데 아직은 확정된 작품이 없어요. 그리고 물론 드라마도 할텐데 이번에는 현대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면의 고뇌를 리얼하게 드러내는 캐릭터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요. "

그는 "시청자에게 사랑받은 만큼 나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허준' 의 교훈" 이라며 "1994년 드라마 '종합병원' 출연 시절 사귄 의사 친구 10여명과 8월중 '허준' 촬영지였던 해남 등을 돌며 무료 진료 서비스를 해볼 생각" 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아직 '허준' 은 끝나지 않았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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