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서 압박 … 하토야마 바늘방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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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가 연일 안팎으로 몰리고 있다.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갈수록 강도가 높아져 외교책임자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이런 가운데 정권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간사장은 21일 한 TV프로그램 녹화에서 “총리직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토야마 총리로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주미 일본대사 예정 없이 불러=클린턴 장관은 21일(현지시간) 후지사키 이치로(藤崎一郞) 주미 일본대사를 예정에도 없이 국무부로 불러들였다. 일본과 미국 언론들은 “미국의 국무장관이 우방의 대사를 예정 없이 부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원점에서 재고하기로 한 하토야마 정권에 대한 미국의 강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15분간 이뤄진 이날 회담에는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배석했다. 구체적인 회동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은 “양국 간에 존재하는 폭넓은 이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했다. 후지사키 대사는 회담 후 “양국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클린턴 장관의 생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해 후텐마 기지를 나고(名護)시로 이전하기로 한 기존 미·일 합의를 하루빨리 수용하고 결정하라는 요구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일본 정부가 이 문제 결정을 내년으로 넘긴 것은 유감이며,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미·일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입장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후지사키 대사와 만난 뒤 곧바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찾아가 이날 대사 면담, 지난주 하토야마 총리와의 코펜하겐 회담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15일 “양국 합의도 중요하지만 합의를 강행할 경우 결과가 위험하다”며 결론을 내년으로 미루기로 최종 결정했다. 일 정부는 이를 미 행정부에 신속하게 전달하고 협의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이었다.

◆실세 오자와 등장하나=오자와 간사장은 21일 한 TV프로그램 녹화에서 “총리직에 매력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정말로 (유권자가 내가 총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간사장은 실무적이지만 대신(총리대신) 자리는 형식적인 일이 많아 별로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이 출범 석 달 만에 40%대로 떨어지고 조기 실각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발언에 정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하토야마 정권 출범 후 당과 내각 업무가 철저히 양분된 상황에서도 오자와의 발언과 행동에 맞춰 정권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내년 초 하토야마 총리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을 등판시키거나 오자와가 직접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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