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길주 갱도' 의도 뭘까] 핵실험? 협상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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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하려 하는가, 아니면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제스처인가. 뉴욕 타임스가 6일 보도한 '북한 길주에 지하 핵실험 징후 포착' 뉴스가 파장을 부르고 있다. 실제로 핵실험을 할 경우 한반도는 북한 폭격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 5월 이래 최대의 위기 국면을 맞을 공산이 크다.

핵실험 쪽에 무게를 둔 정보 당국자들은 함북 길주에서 포착한 내용 가운데 시멘트 반입을 주목하고 있다. 광산용 굴착과 핵실험용 갱도 굴착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광산을 굴착할 경우 통상 갱도에서 잡석과 토사를 들어낼 뿐 시멘트를 반입하지 않는다. 반면 핵실험을 할 경우 시멘트를 다량으로 반입한다. 핵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을 차단하기 위해 갱도를 이중삼중으로 밀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시멘트를 포함해 다량의 자재를 반입하고 있다. 문제의 위성사진을 판독한 한 정보 당국자는 "갱도 내부로 반입되는 물자가 반출되는 양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10월부터 포착된 굴착공사 속도가 최근 부쩍 빨라진 데다 갱도의 형태가 98년 파키스탄의 지하 핵실험용 갱도와 유사하다. 관측용 전망대는 북한이 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할 때도 건설됐었다.

반면 굴착공사가 대미 협상력을 높여 워싱턴으로부터 보다 큰 정치.경제적 보따리를 끌어내기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특유의 정치.군사 카드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미국의 정찰위성이 감시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보아란 듯이 공사를 하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국 외교협의회(CFR)의 핵 전문가인 찰스 퍼거슨 박사는 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출연해 "북한이 길주에서 핵실험 준비를 한다면 미국의 정찰위성에 포착되지 않도록 위장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며 "노출된 상태로 작업하는 것은 전 세계의 주목을 끌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핵실험에 필수적인 전자계측 장비가 반입되는 장면이 포착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지하 핵실험에 미사일 지상 발사에나 필요한 관측용 전망대를 건설한 것도 '어색한' 대목이다.

한편 미 행정부 일각에서는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는 관측이 부상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뒤 경제제재를 받더라도 몇 년이 지나면 제재가 풀리면서 정식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파키스탄은 98년 핵실험 뒤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았으나 미국은 2001년 9.11 이후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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