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병원문을 닫아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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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결국은 정면충돌뿐인가.

정부의 의약분업안에 반발하는 의사들이 투표를 통해 집단폐업 강행을 결정한 가운데 정부는 어제 관계부처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폐업 의사들의 면허취소.징집 등 강경대응을 재확인해 의.정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의사들이 폐업준비에 들어가면서 20일 이후 외래 진료와 입원 예약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예정됐던 수술까지 취소해 사상 초유의 의료 공백이 닥칠 전망이다.

의약분업에 따른 현실적 문제점이 의료계 지적대로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정 방식이 이런 최악의 집단행동으로 나와선 어떤 해결점도 찾을 수 없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벌이는 투쟁은 그 목표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집단폐업을 위해 암환자 수술까지 취소했다니 말문이 막힌다. 의약분업이 무엇이길래 환자의 생명까지 팽개치며 투쟁을 해야 하는가.

의료계 불만은 약사들의 임의조제 가능성과 낮은 수가로 압축된다. 처방과 조제의 분리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분업안은 약사들의 일반약품 혼합조제를 허용해 약사의 처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환자들이 불편 때문에 기존 습관에 의존하고, 약사들이 이를 악용할 경우 의사들의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

또 의사들은 그동안 낮은 수가체제에서 약 판매에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 왔기 때문에 분업이 되면 수입이 다소 감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과연 이들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의사직을 내놓고 환자 생명을 볼모로 할 정도로 절박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의사들이 보다 대국적 견지에서 유연한 자세로 대응해 주기를 거듭 촉구한다. 정부는 어제 6개월 시한의 의약분업 평가단을 운영해 의사들이 지적하는 임의조제.대체조제.의약품 분류 등에 문제가 나타날 경우 약사법 개정을 통해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도 이 기간의 분업을 강제된 시범사업으로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시행해 보면 보완해야 할 제도상 문제가 드러날 것이고, 수가 조정을 위한 자료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곳곳에서 정부의 졸속 준비가 드러나고 있다. 의사들의 반발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모의 테스트에서 드러났듯이 약국의 약품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준비상태를 재점검해 혼란과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분업의 한 축인 의료계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책 집행이 중요하다. 의약분업평가단 운영에 있어 의사들이 제기하는 불만과 우려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장치와 의지를 확실하게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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