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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유혹’ 작전은 달콤한 독약과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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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작전주에 휘말리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대박’이라는 장밋빛 환상이 깨지는 순간, 남아 있는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투자손실과 뒤늦은 후회뿐이다. 작전주를 ‘악마의 유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여기 작전 때문에 울고, 작전 탓에 목을 맸던 CEO가 있다. 외식 전문업체 스토브 이상훈(40) 대표다. 작전에 얽힌 그의 쓰디쓴 실패담과 뼈를 깎는 재기 스토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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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그는 눈칫밥을 먹었다. 부모가 이혼해 이모 손에 자랐다. 두 살 터울 남동생, 네 살 어린 여동생의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중국집 배달, 구두 닦기, 신문 배달 등 안 해 본 게 없다.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외식 전문업체 스토브의 이상훈 대표는 그러나 절망하지 않았다.

증시 작전에 걸려 죽다 살아난 스토브 이상훈 대표 #투자 6개월 만에 빈털터리 … 외식업체 재정비 부활 ‘날갯짓’

고난보다 무서운 게 희망을 접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19세 때인 1988년, 이 대표는 신라호텔 외식사업부에 입사했다. 임무는 홀 서빙이었지만 틈틈이 조리를 배웠고, 메뉴를 개발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외식업체를 창업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메뉴를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1997년 11월, 국내 최초 퓨전 레스토랑 ‘궁’의 창업 스태프로 발탁됐던 것. 한식을 다른 나라 음식과 섞는 ‘퓨전.’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생소한 분야였다. 이 대표는 예를 들어 고추장(한식)으로 새우를 볶아(중식) 양식 그릇에 담거나, 스테이크에 숙주나물을 넣어 굽는 메뉴로 승부를 걸었다.

빅히트한 메뉴만 20개에 달했다. ‘퓨전 창시자’라는 입소문이 퍼진 덕에 언론사 취재도 제법 들어왔다. 그는 “들떴다”고 말했다. ‘궁’의 월 매출이 1억원을 훌쩍 넘은 데다 곳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니 그럴 만도 했다.

2004년 이 대표는 자비로 퓨전 중국집 호차이 익스프레스, 전통 중국집 꿍시꿍시를 창업한다. 아시안 퓨전 누들바 스토브(2005), 일본식 주점 아지노구니 노부(2006), 곱창 전문점 만수(2006)도 연달아 열었다.

성공에 들떠 작전에 올인

이런 5개 브랜드를 총괄하는 회사는 ㈜스토브로 2007년 매출은 42억원, 지점 수는 11개에 달했다. “부러울 게 없었죠. 창업하는 브랜드마다 성공했으니까요. 그때 조심했어야 했는데….” 떠오르는 해는 볼 수 있다. 하지만 성큼 떠오른 후엔 눈이 부셔 바라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막 창업했을 땐 빈틈이 쉽게 보이지만 어느 정도 반석 위에 오르면 이를 찾기 힘들다. 창업보다 어려운 게 유지라는 얘기다. 시장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성장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이 대표는 까맣게 잊었다. 주머니에 현금이 넘치자 마냥 들떴던 것이다.

일주일에 2~3번은 골프장에 갔을 정도다. 이 대표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온 것은 이 무렵이다. 작전의 무서운 덫에 걸린 것이다. 2007년 초여름, 그는 김포공항 주변 외식업체 대표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외식업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의 모임. “현금도 많고 씀씀이가 제법 큰 사람들이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이 자리에 동석한 사람이 있었는데, 증권사 직원이었다. 이 직원은 ‘가는 종목을 추천할 테니 무조건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 ‘간다’는 뜻이 뭔가?

“주가가 무조건 오른다는 의미다. 일종의 은어다.”

>> 증권사 직원은 어떻게 동석했나?

“잘 모르겠다. 외식업체 대표들과 친한 사이였던 것 같다.”

>> 뭐라고 말하면서 투자를 권유하던가?

“확실한 종목이 있는데, 투자하면 대박이라고 했다.”

>> 작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나?

“누가 그런 생각 하겠나. ‘간다’고 하니 그런 줄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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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주란 일부 세력이 대량 매집과 매도를 반복하며 인위적으로 시가를 높이는 주식을 말한다. 작전 세력이 시세를 조종하려면 무엇보다 개미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자금만으로 주가를 부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전 성공으로 목표 주가에 도달해도 개미가 필요한 것은 매한가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제아무리 작전주라도 살 사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작전을 ‘매집·매도의 기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 증권사 직원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나?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기업 오너의 자금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람도 참여했다.”

작전 세력이 가장 먼저 포섭하는 사람이 있다. 대주주다. 작전에 주로 이용되는 소형주의 50% 이상은 대주주가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형주의 주가는 실제로 대주주의 움직임에 따라 급변하게 마련이다.

>> 정보는 무엇이었나?

“인수합병(M&A)이었다.”

>> 투자 금액은?

“은행에 있던 4억원가량을 몰빵했다.”

>> 돈을 빼서 투자할 땐 걱정되지 않았나? 실패할지 모른다는….

“반대다. ‘대박을 치겠구나’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 대표가 사들인 주식의 가격은 2007년 6월 중순~7월 초까지 보름간 하루 15%씩 올랐다. 일일 거래량은 500만 주(총 2800만 주)에 달했다. 이 대표는 “그야말로 대박 조짐이었다”며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주가 급락을 알리는 경고 사이렌은 그로부터 얼마 후 울렸다.

>> 주가 급락 징조는 언제 왔나?

“보름 동안 (주가가) 오르다가 갑자기 하향세로 돌아섰다. 처음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위안했지만 속도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팔지 말지를 고민할 겨를도 없이 추락했다.”

“증권사 직원, 기업 오너 자금담당이 유혹”

>> 매도하면 그만이지 않았는가?

“그게 안 된다. 워낙 많은 돈을 투자해서인지 욕심이 났다. ‘다시 오르겠지’라는 기대감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작전이 시작되면 주가는 일정 기간 오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작전이 끝났다고 곧장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아니다. 물량을 넘겨받은 개미들 사이에서 매매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추가 상승 또는 반등에 대한 기대심리가 주가를 떠받치는 셈이다. 그래서 주가 상승기에 진입한 개미들은 큰 손실을 보기 십상이다. 이 대표가 그랬던 것 같다.

>> 언제 바닥으로 떨어졌나?

“보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현금 4억여원을 몽땅 날린 이 대표. 일할 의욕도, 잠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생활도 달라졌다. 매일 11개 지점을 돌아야 직성이 풀렸던 그였지만 작전에 휘말린 이후엔 온종일 주식 사이트만 봤다. 자신이 피땀 흘려 일군 외식업체가 뒷전으로 밀린 것이다. 급기야 손해를 만회할 요량으로 가족,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용대출도 받았다. 이 대표로선 ‘악마의 유혹’에 제대로 걸려든 셈이다.

>>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나?

“하루 종일 술만 마셨다. 주식 사이트 보느라 집 밖엔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 머리엔 온통 주식 생각뿐이었다.”

>> 또 주식투자를 했나?

“그렇다.”

>> 이번에도 작전주에 손을 댔나?

“그게 작전주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정보를 받아 투자한 것은 맞다. 투자 경로는 이전과 같다.”

>> 소재는 뭐였나?

“무기 관련주였다.”

>> 이번엔 수익을 올릴 것으로 봤나?

“사람이 이상하다. 그렇게 믿게 되더라. 주가가 1만원에서 20만원까지 간다는 말에 깜빡 속았다.”

>> 결과는?

“상장 폐지됐다.”

주식에 손을 댄 지 6개월 만인 2007년 12월, 그는 빈털터리로 전락했고 빚만 쌓였다. 돈은 물론 신용도 잃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가 창업한 외식업체의 경영사정이었다. 주식에 한눈파는 사이 5개 브랜드 가운데 2개(호차이 익스프레스·꿍시꿍시)의 매출이 반 토막 났다.

게다가 2008년 터진 쇠고기 파동으로 곱창집 만수도 문을 닫을 지경에 몰렸다. 이랜드 노조 파업의 여파도 이 대표를 괴롭혔다. 이랜드 계열 뉴코아백화점에 입점해 있던 호차이 익스프레스, 꿍시꿍시가 (노조 파업의 장기화로) 손님의 발걸음이 뚝 끊기면서 폐업 위기에 빠진 것이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 연일 적자가 늘어났겠다.

“곱창집 만수의 매출은 월 50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급락했다. 호차이 익스프레스, 꿍시꿍시도 월 400만원을 벌기 힘들었다. 세 개 모두 월 3000만원은 벌어야 손익을 맞출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6개월 이상 계속되니까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견디기 힘들었다.”

>> 심경은 어땠나?

“주식으로 번 돈 다 날리고, 사업까지 엉망진창이 됐으니 어땠겠나? 재기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주식투자 실패, 쇠고기 파동, 이랜드 노조 파업에 휘말린 지난해 이 대표는 5개 브랜드를 2개로, 11개 지점은 9개로 줄였다. 적자 브랜드 및 지점을 몽땅 정리한 것이다. 자책감을 견디지 못한 그는 2008년 어느 날 넥타이를 이용해 목까지 맸다고 한다. “삶의 끈을 놔 버리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 절망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나?

“자살을 결심했을 때 불현듯 아내가 생각나더라. 외식업체 사장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신이 도왔는지 다행히 넥타이 끈이 풀렸다. 그때 새출발을 다짐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이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곧장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안 되는 지점을 모두 정리했으니 되는 것만으로 승부를 걸겠다고 다짐했다. 이를테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현장경영도 다시 시작했다.고객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매장을 직접 체크했다.

멋들어진 구두를 벗어 던지고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 것이다. 최근엔 매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현장 근무자와 격 없는 대화를 나누는 등 ‘스킨십 경영’에 힘을 쏟는다. 위기 탈출을 위한 그만의 고육책이다. 주식투자는? 물론 하지 않는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말

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브랜드·지점을 정리해 얻은 돈은 고스란히 재투자했다. 대기업 외식업체에서 명성을 날리는 직원을 직접 발탁해 연구개발팀을 만들었다.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메뉴를 개발해야 스토브의 창창한 미래가 열린다’는 계산에서다. 상권분석팀·컨설팅팀도 추가로 설립해 회사의 체계를 갖췄다. ‘위기의 순간엔 투자하라’는 공식 그대로다.

결실은 알차다. 올해 들어 일본식 라면·돈가스 덮밥 전문점 ‘스파이스 스토리’, 분식의 고급화를 선언한 ‘마미스 키친’ 등 2개 브랜드를 론칭했다. 9개까지 줄어들었던 매장 수는 12월 현재 35개로 늘어났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10배가량 늘어난 8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2010년엔 매장 100개 돌파와 외식 PB상품 출시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일본·동남아 진출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지난 10월 유통법인 SH유통시스템을 설립했다. 그는 “이 유통법인은 스토브가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제 주식차트가 아닌 고객의 마음을 읽는다. 주식 대신 연구개발에 돈을 투입한다. 직원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주식은 취미로 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작전에 휘말려 패가망신할 뻔했지만 작전 덕에 배운 점도 많다. 단숨에 천금을 거머쥘 수 없다는 교훈이다.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이 대표는 당초 계획대로 외식업체의 방향타를 다시 잡았다. 작전에 실패한 그의 작전은? 발품과 피땀 전략이다.

이윤찬 기자·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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