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정상회담후 경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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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동안 묵묵히 대북사업을 추진해온 기업인들은 누구보다 남북 정상회담을 반기고 있다.

이들은 "북한도 최근 남북경협에 매우 진지하며 적극적" 이라며 "정상회담이 경협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그러나 경협이 결실을 보려면 상호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규제완화.투자보장 등 제도정비와 함께 북한내 인프라 구축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정상회담이 남북경협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맞선(정상회담)이 연애로 이어지려면 정부나 기업이 마음을 열고 자세를 바꿔야 한다. 북한을 흡수하려는 듯한 인상은 금물이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되며,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대북사업 승인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등 규제를 풀어 북한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모두 보내야 한다.

우리처럼 대북사업을 오래 해온 기업도 잡다한 구비서류 때문에 피곤하다.

피아트와 합작으로 북한에 자동차조립공장을 만들고 있는데 남한에서 요구하는 사업 관련 서류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북한측이 '왜 그게 필요하느냐' 고 서류 하나 갖추는 데 한두달씩 걸려 사업일정이 늦어지곤 했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풀리지 않겠나 기대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컴퓨터나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으므로 이 쪽에서도 남북이 같이 할 일이 많다고 본다.

◇ 유완영 ㈜아이엠알아이 회장〓북한에 자주 가는 편인데 최근 북한이 남북경협에 상당히 공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회사의 북한 임가공 공장인 전자제품개발공사의 경우 북한 현지 생산품을 중국 등 제3국으로 수출하겠다는 뜻을 비추자 북한 당국이 중국품질규격(CCIB)인증을 따내는 데까지 직접 나서고 있다.

올 초부터는 우리 기술자가 방북할 때 일정을 잡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정상회담으로 물꼬가 터지면 기술자들이 북한에 가는 데 일회용 초청장이 아닌 수시왕복 초청장(복수비자)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머잖아 북한 기술자들이 국내 공장에서 기술연수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특히 북한에 한국 중소기업 공단을 설치하면 연구개발.물류 등까지 포함해 개별기업 차원을 넘어선 포괄적인 대북 진출이 이뤄질 것이다.

◇ 김영수 캐드콤 회장〓1998년 첫 방북 직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대표들과 술잔을 나누며 '왜 3국을 통해 방북해야 하느냐' 는 이야기를 나눴다.

정상회담 이후 경협이 본격화하면 육로로 직접 북한에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는 특히 중소기업 중심의 경협이 확대될 것이다. 정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중소기업형 전자제품.생활용품.조립기계 분야의 임가공 사업은 당장 할 수 있다. 우리 회사가 3년 동안 북한에서 조립해 반입한 제품을 보면 국내 제품에 뒤지지 않는다.

숙련공이 많고 언어와 풍습이 같아 앞으로 북한은 우리 제품의 제3국 수출기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본다.

투자보장협정 등 협력의 기본틀이 만들어지면 대북투자에 따른 우려가 상당 부분 없어질 것이다.

다만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미흡하고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일시에 많은 기업이 북한에 들어가 사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 이종근 LG상사 지역개발팀장〓최근 북한의 경제재건 의지가 여느 때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정상회담은 이런 북한의 의지와 어우러져 대북사업의 물꼬를 틀 것이다. 지금까지 대북사업은 사업 자체보다 주변 환경이 사업을 어렵게 했다.

우린 나진.원산에서 가리비양식업을 하는데 기술을 지도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려면 신청한 뒤 몇달을 기다려야 하며, 전화로 현지와 연결하려 해도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자유왕래와 전력.도로.철도.항만 등의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힘써주기 바란다.

그동안 시간.비용이 많이 드는 해상 수송이 유일한 수단이어서 큰 사업을 하기 어려웠지만 인프라가 갖춰지면 경협이 금새 활기를 띨 것이다. 북한내 인프라 구축 사업은 건설 붐을 일으켜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는 계기도 된다.

◇ 장자크 그로하 주한유럽상공회의소장〓유럽 기업들이 90년대 초부터 나진.선봉.평양 등을 방문해 투자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이중과세나 개인재산 보호.이익회수 보장 등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면 북한 정부가 법적 장치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정상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기업간보다 기업.기업간 등 민간 차원에서 경협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에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지 여건을 꼼꼼히 따져본 뒤 사업을 결정해야 한다. 유럽연합(EU)에는 북한 진출에 대한 제재가 없다. 이탈리아.덴마크.핀란드.포르투갈.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가 이미 북한과 경협 협상을 진행하거나 마쳤다.

주한EU상의는 95년부터 해마다 40~50개의 유럽 기업을 모아 북한에 사절단을 보내왔다. 하반기에도 회원사들이 북한을 방문할 것이다.

산업부 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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