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일 공조 흔들리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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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어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전 일본 총리 장례식에 참석한 길에 빌 클린턴 미 대통령.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와 잇따라 회담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북 정상회담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 조문(弔問)외교 형식을 빌려서라도 미.일 지도자와 만나 변함없는 공조를 다짐한 것은 최근 한.미간의 갈등설이 나오는 시점에 시의적절한 일이었다고 본다.

한반도 문제의 남북 당사자화(化)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주변국, 그 중에서도 특히 미.일과의 탄탄한 협조체제가 남북문제 해결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지난 4월 정상회담에 합의한 이후 한반도 주변국들은 각자 나름대로 회담의 경과와 전망에 따른 손익계산서를 작성 중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외교의 주된 축(軸)이라 할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한국 정부를 겨냥한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 게 사실이다.

지난달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자문관이 방한한 목적을 두고도 말이 많았고, 새로 내정된 중국.미국 주재 대사의 격(格)을 놓고 우리 정부의 '미국 경시' 때문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리 총리가 서울에 있었는데도 한국측으로부터 아무런 귀띔도 못받았다' 는 불만이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제기된 형편이다.

이같은 조짐들은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의 상황 진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정부는 '한.미.일 공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고 펄쩍 뛰거나 심지어 자국 이익을 앞세운 외국 언론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일본의 시각이나 바람은 우리와 얼마든지 차이가 날 수 있으며,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그 차이를 치밀하게 조율.조정하는 우리측 외교력에 있다고 판단한다.

무조건 부인하거나 언론 탓으로 돌릴 사안이 아니다. 정상회담이 전통적인 우방들의 의구심.소외감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해선 '정상회담 이후' 가 곤란해진다.

당장 회담 후 북한에 본격적인 경제 지원을 하기 위해서도 미.일 양국의 협조는 필수불가결하다.

우리가 보기에 이번 정상회담은 민족 내부 문제와 국제적 문제 중 어느 한 쪽도 경시해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이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 대량 학살무기 문제도 적절한 선에서 제기해야 할 것이고, 북.일 수교회담을 촉진하는 선순환(善循環)을 유도하는 일도 중요하다.

남북문제의 당사자화란 것은 남북이 상황을 주도하자는 뜻이지 우리 주변의 국제환경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성을 감안한다면 단기적 성과만 고려해 갑작스럽게 외교축을 흔드는 것처럼 비치게 하는 것은 현명한 행위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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