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예술작품 소개한 윤범모의 '평양미술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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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사흘 뒤면 남북정상이 서로 만나는 북한의 수도 평양은 조형예술의 도시, 공공미술의 천국이다.

사람과 차가 드문 도시 평양을 특징짓는 것은 세계최고 높이의 주체탑, 세계 최대규모의 개선문과 20m높이의 김일성 동상들이다. 더불어 평양은 역사의 도시다.

삼국시대 고구려 수도로 정해진 이후 보통문.대동문 등 수많은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미술사학자 윤범모씨가 쓴 '평양미술기행' (옛오늘.9천8백원)은 평양을 상징하는 예술작품을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고자 시도했다. 윤씨는 1998년 11월 아태평화위원회 초청을 받아 평양과 묘향산.정방산 일대를 다녀왔다.

책은 제목처럼 기행문 형식이다. 북한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나열하면서 교양 수준의 미술.역사 상식, 그리고 쉽게 풀어 쓴 해설을 덧붙였다. 미술얘기인 만큼 거의 모든 페이지에 관련 사진을 실었다.

기행은 평양 산책으로 시작한다. 북한의 국보 제1호 대동문과 제2호 보통문은 6세기 후반 고구려 수도로 만들어진 평양성의 동문과 서문에 해당한다. 저자는 대동문에서 평양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보통문에서는 문을 만든 목수 사제지간의 전설을 들려준다.

북한미술의 빼어남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벽화 미술관' 이라 불리는 평양의 지하철역을 꼽는다. 저자는 역사(驛舍)의 벽을 장식한 벽화에 대해 "침침해야 할 역에 꽃이 피어 있다. 무엇보다 규모에 놀란다. 그리고 아름다운 색상에 다시 눈을 비빈다. 섬세하고 화사하고 선명하다" 라며 감탄했다.

벽화가 거대한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색자기(타일)로 만든 쪽그림(모자이크)이라는 사실이 전문가의 눈을 의심케 했다. 평양사람들이 '지하궁전' 이라고 자랑할만하다.

벽화의 양식은 북한이 주체적으로 발전시켜온 '조선화' 에 해당한다. 조선화는 흔히 동양화, 최근 한국화로 불리는 장르의 채색화다.

동양화 중 먹으로만 그리는 수묵화는 "양반 통치배들이 누린 향락주의의 이용물" "봉건주의 잔재" 라는 사상적 이유로 북한에선 찾아볼 수 없다.

'조선화' 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기초한, 선명하고 간결한 그림이다. 힘차고 탄력적이면서 주제(당성.계급성)를 확실히 전달한다. 북한예술의 상징이다.

그러나 저자는 북한예술을 상징하는 '조선화' 를 보면서 '이발소 그림' 이라 폄하할 정도로 천편일률적이라는 결정적 결함을 지적했다. 화사한 색채지만 강약의 악센트가 없고, 화면 전체를 평면적으로 균질화하기 때문이다. 평양의 미술은 곧 북한사회인 셈이다.

거대한 창작집단인 만수대 창작사를 둘러보고 대표적인 예술가들과 나눈 얘기들, 고구려 유적인 강서대묘와 동명왕릉, 묘향산과 정방산 유적들에 대한 기록도 읽을 거리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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