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북한…지금 변화중] 17. 대외관계 넓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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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백남순(白南淳)외무상은 지난 4월 초 비동맹각료회의에서 태국 외무장관과 만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할 뜻을 밝혔다.

북한의 외교자세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북한은 지난 1월 초 이탈리아와 전격 수교함으로써 올해를 외교다각화의 원년(元年)으로 삼을 것임을 이미 예고했었다.

북한은 요즘 프랑스.영국 등 유럽연합(EU), 필리핀.태국 등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호주.캐나다 등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한편 한반도 주변 4강(强)외교에도 바짝 고삐를 죄고 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게 아니라 외교전략의 전체 구도에서 흘러나온다.

북한은 냉전시대에 사회주의권 및 비동맹권 외교에 머물러 있었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자 외교전략 수정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1994년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 이후 국가적 위난(危難)속에서 대외관계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만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호소하면서 실용주의적 외교자세로 전환하는 모습이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정책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올들어 전방위(全方位)외교에 본격 나서고 있다.

정책 선회가 두드러진 시점은 지난해 8월이었다. 白외무상이 EU회원국 외무장관들에게 서한을 보내 54차 유엔총회에서 외무장관회담을 갖자고 제의하면서였다.

그는 지난 9월 유엔총회 무대에서 EU 의장국인 핀란드 등 6개국과 회담을 가졌으며 북한-EU 정치대화 지속 등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북한이 그 뒤 이탈리아와 수교한 것은 "새 외교전략에 따라 본격적으로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외교관계를 정상화해나갈 것을 전세계에 선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1월 24일자 사설)한 사건이었다.

EU 15개 회원국 가운데 북한과 수교한 나라는 스웨덴.핀란드.포르투갈.덴마크.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 6개국이며 서방선진7개국(G7)중에 북한과 수교한 나라는 이탈리아가 처음이?

북한은 프랑스.영국.캐나다.독일 등과 접촉을 강화하고 있으며 5월 8일 호주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재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로써 북한의 수교국은 1백36개국으로 늘어났다(한국은 1백83개국). 한편 북한은 동남아.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함으로써 안보와 실리(實利) 두마리 토끼를 쫓기 시작했다.

최근 북한과 말레이시아간에는 사증의 부분 폐지 협정이 조인됐고 필리핀과는 7월께 국교를 수립할 예정이다. 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북한과 국교가 없는 나라는 필리핀과 미얀마인데 미얀마도 북한의 ARF 가입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7월에는 ARF에 옵서버로 참가하고 내년에 정식가맹할 가능성이 크다. ARF는 아태지역의 안보를 협의하기 위해 94년에 발족, 아세안 10개국과 미국.러시아.일본.EU 등 22개 국가.기구로 구성돼 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중동산유국 외교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표단이 쿠웨이트와의 수교 교섭을 위해 6월에 쿠웨이트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쿠웨이트와의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면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과의 수교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외교 다각화는 실리를 전면에 앞세우고 외곽으로 뻗어가는 거미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한국의 협조 아래 진행되는 이같은 북한의 수교국 늘리기가 남북한 관계에 장.단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

특별취재반〓유영구.최원기.정창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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