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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용(御用)을 부끄러워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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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용(御用)'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 합류한 지식인.종교인과 사회운동가 그룹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김대중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본격화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아예 거리낄 것 없이 어용하는 사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이런 현상은 언뜻 보면 시기적 일치성 때문에 사회의 민주화와 직결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사실은 민주화의 그림자로 따라온 사회 전반의 천박성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독재정권은 뿌리가 취약했기에 정통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학자와 언론인.종교인을 앞세웠다. 이들 어용 지식인.어용 언론인.어용 종교인.어용 문화인은 군사정권에 협조한 대가로 권력에 편입되거나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동료나 제자.친구의 마음까지 얻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의 '어용'들은 어떤가. 넘쳐나는 TV나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해 정권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이들은 민주화에 무임승차해 권력과 돈은 물론 명예까지 챙기려 한다는 점에서 군사정권 시절의 어용보다 더 질이 나쁘다. 그러면서도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위장하고, 때로는 그 위장에 스스로 속는다.

'어용'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해 줏대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사이비'나 '기만'이란 뜻이 들어 있다. 그렇기에 평소의 소신에 따라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은 '친정부적''진보적'일지언정 '어용'은 아니다. 지식인이라고 해서 죽림7현이나 백이.숙제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줏대 없는' 것일 때 어용이 된다.

평소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 내지 폐지하는 데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권력과 가까운 영화인 A씨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고,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던 학자 B씨가 현 정권 들어 진보주의자로 표변했다면 어용이다. 줏대가 없기에. 조.중.동에 자신의 글을 실어 달라고 청탁해대던 C씨가 현 정권 들어 조.중.동 비난의 나팔수로 등장했다면 이 또한 어용이란 딱지를 붙일 만하다. "노무현을 팔아 장사하겠다"던 인터넷 매체나 자신들의 주장과는 다른 정부 정책이 나왔을 때 뜻밖에 목소리를 낮추는 시민단체도 어용이란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줏대 없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했을 수 있기에.

어떤 정권이든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어용을 많이 만들고 싶어한다. 이건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현 정권 들어 문화예술계와 시민단체가 이런 유혹에 많이 넘어가지 않았나 우려된다. 민예총과 민족문학작가회의.문화개혁시민연대 등의 출신 인사들이 문화예술계 각종 단체장을 휩쓸다시피 했다. 이들은 권력과 막대한 예산의 분배.집행권을 가진 데다 "한쪽으로 쏠렸던 문화예술계의 균형을 잡게 됐다"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시민단체도 역대 정권보다는 현 정권과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우호적인 곳이 적지 않다. 우선 달콤할지는 모르지만 지지 기반과 자생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어용이 할퀴고 간 자국은 너무나 깊어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다.

어용은 언제나 부끄러운 것이다. 어용하면서 권력과 돈에 명예까지 움켜쥐려 하는 것은 파렴치하다. 더구나 그러면서도 스스로 정당하다고 여기면 구제불능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