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에 피는 농심… 완도군 청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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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완도 앞바다의 청산도(전남 완도군 청산면)에는 바닷가에 백사장이 펼쳐진 곳이 별로 없다.

보족산.대봉산 등 높이 3백m 내외의 산들이 섬을 채운 청산도는 산자락이 물에 잠긴 곳이 섬과 바다의 경계다. 그래서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들이 해안까지 이어졌다.

그 밭은 지금 보리가 익어 온통 누렇다. 파란 바다에 이어진 누런 밭, 그리고 해송이 빽빽히 들어서 '청산(靑山)도' 란 이름이 붙게 한 푸른 산. 사뭇 낭만적인 정경이고 그로 인해 조선시대에는 신선이 사는 섬이라해서 '선산(仙山)도라고도 불렸지만 청산도는 고난을 안고 살아온 섬이다.

고인돌이 있어 먼 옛날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케하는 청산도는 고려와 조선 때 왜구의 약탈로 몸살을 앓았다.

땅도 척박했다. 평지라고는 섬 가운데 손바닥만한 분지뿐. 그래서 섬사람들은 산을 깎고 나뒹구는 돌로 축대를 쌓아 계단식 밭을 한뙈기씩 만들었다.

밭중에 벌써 보리를 거두고 물을 대어 모를 심은 곳도 있다.

하지만 벼농사를 짓는 곳은 일부. 그 이유를 주민 정수억(63)씨는 "앗따, 태풍 와뿌리면(오면) 베야 겐딘당가(벼야 견딜 수 있나). 고구마나 심어야제" 라고 설명한다.

바다도 거칠어 수많은 남정네들을 삼켰다. 거센 바다는 청산도에 하나의 풍습을 낳았다.

'초분(草墳)' . 사람이 죽으면 땅 위에 돌을 약 50㎝쯤 쌓고, 관을 올려놓은 뒤 짚으로 지붕 비슷하게 만들어 덮는 것이다.

그렇게 3년을 두어 뼈만 남은 뒤에야 매장을 한다. 썩지 않은 성한 몸으로 선산에 들면 조상이 노해 풍랑을 일으켜 사람들을 저세상으로 잡아간다는 믿음에서 생긴 풍습이다.

지금도 섬 곳곳에서 초분을 찾을 수 있다.

당리의 언덕은 영화 '서편제' 촬영지. 송화와 아버지, 남동생이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어깨춤을 추며 황토 언덕길을 내려오는 장면을 찍었다.

지난 3월 청산도를 찾은 임권택 감독은 이 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된 것을 보고는 다시 황토길로 복원해주기를 완도 군청에 부탁했다.

섬 북동쪽 지산리 해변에는 모래 대신 이곳 사람들이 '갯돌' 이라 하는, 아이 주먹만한 자갈이 깔려 있다.

동쪽의 권덕리 해안은 우럭.감성돔이 낚이는 갯바위 낚시터로 주말이면 강태공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청산도로 가는 길목인 완도항 일대에서는 오는 27~31일 장보고 축제가 열린다.

선상 오색등 퍼레이드(27일 오후 9시).전통 선박 노젓기 대회(28일 낮 12시) 등이 벌어진다.

<여행쪽지>

완도항(0633-554-3294)에서 청산도로 가는 카페리가 오전 8시20분, 11시20분, 오후 2시30분, 5시40분 4차례 있다.

청산도까지 45분 걸리며 나오는 배의 출발 시각은 오전 6시30분, 9시50분, 오후 1시, 4시10분. 어른은 왕복 1만2천1백원이고 승용차는 운전자 1명을 포함해 왕복4만2천원이다.

청산도에는 일주도로가 있다. 전체 16.5㎞중 동쪽에 약 4㎞의 비포장 구간이 있으나 승용차가 못다닐 정도는 아니다.

섬 안에 뱃시간에 맞춰 버스가 다니지만 섬 동쪽으로만 간다. 때문에 차를 갖고 가지 않은 관광객들은 지프 택시(552-8519)를 주로 이용한다.

반나절이면 섬을 돌아볼 수 있어 청산도에서 숙박을 하지는 않고 오전에 들어갔다가 오후에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청산도 항구 주변에는 횟집들이 몰려 있다. 완도항 근처 광주식당(554-0441)에서 1만원짜리 한정식을 시키면 숭어회.쇠고기 육회.새우전 등 22가지 반찬이 나온다.

글.사진〓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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