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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무용, 더는 변방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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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스라엘 ‘2009 국제홍보공연’의 폐막작 ‘호라(Hora)’. 이스라엘 최고의 안무가로 꼽히는 오하드 나하린이 예술감독을 맡았다.무용수 11명의 열정적 움직임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바체바 무용단 제공]

1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립 수잔델랄센터. 니브 쉔펠드 무용단의 ‘빅 마우스’가 무대에 올랐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정체성 갈등을 표현했다. 작품은 이스라엘 민속무용의 경쾌한 스텝으로 시작됐다. 무용수들은 5분여 동안 입을 한껏 벌린 채 정면을 응시하기도 했다. 전세계 32개국에서 온 무용 관계자가 이 ‘소리 없는 외침’에 푹 빠져들었다. 9∼13일 열린 이스라엘 ‘2009 국제 홍보공연(International Exposure·IE)’ 현장이다.

IE는 수잔델랄센터가 이스라엘 현대무용을 알리기 위해 1995년부터 매년 여는 행사다. 이스라엘 외무부·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세계 각국의 극장 예술감독, 축제 프로듀서, 무용 비평가 등을 초청한다.

올해에는 오하드 나하린·바락 마샬·야스민 고더·마야 브리너·아카디 자이데스 등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중견·신예 안무가들이 모두 28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야이르 바르디 수잔델랄센터 IE 예술감독은 “바체바 무용단·키부츠 현대무용단·버티고 무용단 등이 IE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IE는 이스라엘의 현대무용의 전초기지다. 올해에는 프랑스 몽펠리에 댄스페스티벌 예술감독(장 폴 몽타라니), 중국 상하이 오리엔탈아트센터 예술감독(린홍밍),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댄스하우스 예술감독(아르네 파거홀트) 등 150 여 명이 참석했다.

공을 들인 만큼 효과는 컸다. 지난 15년 현대무용이 이스라엘의 문화 브랜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스라엘 특유의 역사·종교적 전통에 무용수들의 강인한 몸과 세련된 기술을 입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례로 올 10월 열린 제12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의 개막작으로 이스라엘 안무가 바락 마샬의 작품 ‘몽거(Monger)’가 공연됐다.

올 IE에 참석한 최상철 중앙대 교수는 “바체바 무용단 등 몇몇 무용단의 경우 공연 개런티가 1억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올해 화제를 모은 작품은 야스민 고더의 ‘사랑의 불빛(Love Fire)’과 인발 핀토·압살롬 폴락의 ‘송어(Trout)’. 선율 없는 음악, 춤과 연극의 경계를 연출 등의 실험정신이 돋보였다.

이스라엘 민속춤의 색채를 살린 키부츠 무용단의 ‘적외선(infrared)’과 바체바 무용단의 ‘호라(Hora)’ 등도 호평을 받았다. 무용비평가 이지현씨는 “현대 공연예술의 주요 흐름과 자국의 문화적 개성을 결합해 세계 무용계의 중심부에 진입한 이스라엘의 사례는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국내 무용계에도 좋은 모델이 된다”고 평했다.

텔아비브(이스라엘)=이지영 기자


화제작‘송어’만든 2인

멋진 춤은 관객을 꿈꾸게 하지요
상상력 깨우는 작품이 좋은 작품

올 IE의 최고 화제작은 인발 핀토&압살롬 폴락 무용단의 ‘송어(Trout)’다. 9~12일 나흘 연속 공연됐다. 각각 ‘송어’ 안무가이자 무용단 대표인 인발 핀토(40·사진 오른쪽)와 압살롬 폴락(39)을 만났다.

-무대에 물을 채우고, 그 위에서 공연을 했다.

“지난해 노르웨이의 초청을 받아 6개월 동안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키친 오케스트라라는 아주 흥미로운 악단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얻은 영감을 무대에 올렸다. 그때 느낌을 살리려다 보니 물을 사용하게 됐다.”

-제목이 왜 ‘송어’인가.

“원래 한 단어로 된 제목을 좋아한다. 그냥 ‘Trout’라는 단어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왜 이름이 그걸까, 왜 무용수들은 이렇게 움직일까, 작품의 줄거리는 뭘까 등에 집착하면 곤란하다. 그냥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그래 알겠어’ 하게 된다.”

-시종일관 느낌을 강조한다.

“좋은 춤이란 관객들이 자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든다. 관객들이 색과 소리·움직임 등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 느낌이 상상력을 깨우게 된다면 그게 바로 좋은 작품이다.”

-영감을 깨우기 위한 노력은.

“작업 자체를 노는 것처럼 재미있게, 즐기면서 한다. 또 가끔은 무대 위에 직접 올라간다. 무대에 서면 감각이 살아나고 일상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든다.”

글·사진 텔아비브=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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