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등극’ 예고된 中 미래 권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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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호 10면

시진핑 국가부주석은 중국 정계의 5세대 선두 주자다.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에 이어 이변이 없는 한 2012년 10월께 열릴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에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시진핑은 누구

차기 지도자로 불리는 시 부주석은 몇 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2005년 저장(浙江)성 당서기 시절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도 한국 정가는 그를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다.

시 부주석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2007년 3월. 5년째 저장성 당서기로 일하던 그해 3월, 천량위(陳良宇) 당시 상하이 당서기가 비리혐의로 낙마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후 주석의 측근인 리커창(李克强) 당시 랴오닝(遼寧)성 당서기와 경합했다. 하지만 시 부주석은 상하이방(上海幇)과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들의 자녀그룹)의 지지를 받아 이 자리를 차지했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심복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지원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그해 10월 열린 제17차 당대회에서 시 부주석은 라이벌인 리커창(서열 7위)을 제치고 당 서열 6위에 올랐다. 지난해 3월엔 국가부주석 자리에 올랐다. 물론 변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초 올 9월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던 관측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소식통들은 “시 부주석의 당내 입지는 튼튼하다”고 전한다.

시 부주석에게는 태자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국무원 부총리와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을 지낸 시중쉰(習仲勛:1913~2002년)이 부친이기 때문이다.

시 부주석은 문화혁명 중 개혁파였던 부친이 탄압을 받는 바람에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60년대 아버지가 허난(河南)성 노동자로 강등되는 바람에 농촌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반동학생’으로 놀림 받던 그는 16세에 산시(陝西)성 옌촨(延川)현으로 내려가 일했다. 문혁 말기였던 75년 그는 7년간의 농촌생활을 마무리하고 칭화(淸華)대 화공과에 진학했다. 이후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는 대학 졸업 뒤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으로 배속받아 현역 군인 신분으로 일했다. 이후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부서기를 시작으로 푸젠(福建)성에서 주로 활약했다. 오랜 지방행정 경험은 2007년 중앙 정치무대로 약진하는 밑거름이 됐다. 푸젠성에서 일하는 동안 유명한 전통가요 가수인 펑리위안(彭麗媛·47)을 만나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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