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근대 건축물 22곳 그곳에 새겨진 역사의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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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모던 스케이프
박성진 지음, 이레
334쪽, 1만8000원

근대는 고여있는 시간이다. 식민지 기억으로 질펀한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아픔의 기억을 은폐하고 외면하려는 집단 인식 탓일까. 우리에게 근대란, 일본 제국주의의 시간이고, 그러므로 피하고 싶은 웅덩이다. 우리 둘레에 군데군데 자리잡은 근대 건축물은 그 악취 나는 시간을 가만히 증언한다.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그 단단한 돌덩어리들이 오롯이 근대의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첨단을 달리는 현대 한국에서 섬처럼 둥둥 떠다니는 근대 건축물을 보듬고 어루만진다. “근대란 다소 기형적이라도 우리가 안고 가야할 시대의 모습”이란 게 저자의 생각이다. 건축코디네이터인 저자는 그래서 건축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미가 깊은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 스물 두 곳을 둘러봤다.

책은 딱딱한 건축 이론은 애당초 건드리지도 않는다. 대신 촉촉한 감성으로 근대의 풍경을 응시한다. 저자는 꼬박 2년 6개월에 걸쳐 근대 건축물에서 묻어나는 사소한 일상의 흔적을 채집했다. 근대 역사의 도시 강경, 권위 대신 시정(詩情)을 품었던 충청남도청, 근대 경관을 대표하는 건물이었던 서울역사 등 스물 두 가지 근대의 표정이 드러난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주한 영국대사관저에 얽힌 사연도 풀어냈다.

서울 정동은 한국 근대사의 굴곡을 한 눈에 보여주는 한편 도시의 낭만이 깃든 장소다. 사진은 덕수궁 즉조당 처마밑 풍경. 이레 ⓒ 강상훈 제공

시간이 차곡차곡 포개지면 인간과 건축물 사이엔 기억이 흐른다. 책이 안타까워하는 지점도 바로 ‘장소의 기억’이다. 근대 건축물을 건축학적 구조나 기능성으로만 따져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근대 건축물의 해체나 재개발을 검토할 때 “공공의 집단적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책의 메시지다. 책 곳곳을 메우는 고즈넉한 스틸 컷이 근대의 풍경을 더욱 넉넉하게 한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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