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읽기] 권력자 앞에서 인간은 왜 작아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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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왜 부패한 정치가가 잘나갈까
왕춘용 지음
임지영 옮김
영진미디어
328쪽, 1만5000원

1956년 2월 소련 공산당 대의원회의. 이 때부터 흐루시초프는 죽은 스탈린을 맹렬히 비난했다. ‘살아있을 땐 입도 뻥긋 못하더니…’ 듣는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예의 스탈린을 비난하던 그에게 어느 날 쪽지 하나가 전해졌다. ‘후루시초프, 당신은 그때 어디 있었죠?’ 흐루시초프는 쪽지의 내용을 큰 소리로 읽은 뒤 말했다. “이 쪽지를 보내신 분은 연단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그러자 찬물을 끼얹은 듯 회의장엔 적막이 흘렀다. 그는 다시 쪽지를 들어 흔들었다. 장내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흐루시초프가 말했다.

“좋습니다. 말씀드리죠. 당시 저는 지금 여러분이 앉아 계신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지은이가 광의의 게임이론인 ‘인질의 딜레마’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먼저 사례를 든다. 다음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여기서 청중은 인질과 같다. 당 간부들이고 숫자도 많지만 흐루시초프 한 사람을 공격해 굴복시키지 못한다. 모두 같이 나서면 가능한 일이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나서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인질범에게 대들지 못하는 다수의 인질과 같다는 것이다.

문학·법학박사로 한창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지은이는 복잡한 게임이론을 다양한 우화와 사례를 통해 풀어낸다. 삼국지에서 현대 중국까지, 로마에서 현대 미국까지 동·서양을 꿰뚫는 풍부한 사례가 장점이다. 책 속의 사례들만 잘 기억해도 어디가서 박식하단 소릴 들을 정도다. 다만 툭툭 튀어나오는 낯선 용어와 관념적 언어가 거슬린다. 각주를 달고 쉽게 풀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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