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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좌파·우파 동거 끝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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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프랑스 정치체제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코아비타시옹(좌우 동거정부)' 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16일(현지시간)의회연설에서 "현재 7년인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축소하는 방안에 찬성하며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함께 임기축소를 위한 헌법개정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 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프랑스의 국회의원 임기는 5년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함께 뽑으면 좌파나 우파 중 다수당을 이룬 쪽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훨씬 커 좌우 동거체제가 나오는 게 힘들어진다.

대통령 7년 임기제는 1958년 샤를 드골 대통령이 도입했다. 그러나 그뒤 "대통령의 임기가 너무 길어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는 비판이 계속돼 왔다. 거기다 좌우 동거 정부의 출현에 따른 대통령과 총리의 갈등노출도 적지 않았다.

40여년간 지속돼 온 개헌논쟁에 불씨를 지핀 사람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이다.

우파인 그는 지난 10일 야당의원 1백명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 임기 축소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동안 대통령 임기 축소개헌에 반대해 온 시라크 대통령은 최근 "생각이 바뀌었다" 며 "2002년 대통령선거까지 '개혁' 을 실시할 용의가 있다" 고 말했다.

2002년 대선의 강력한 라이벌로 예상되는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가 모두 찬성한 이상 헌법개정은 초읽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프랑스 헌법은 헌법 개정안을 '대통령의 이름으로 총리가 제출'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남은 쟁점은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의 시기다.

조스팽 총리는 국민투표를 가능한 한 앞당기자는 주장이고 시라크 대통령은 2001년 가을에나 투표에 부치자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양자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시라크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남은 임기 동안 자신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조스팽은 한시바삐 시라크를 무력화해 차기 대선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대통령 임기 축소에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분의 3이 현행 7년 임기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부정적 입장은 16%. 프랑스 국민 중 상당수가 좌우 동거 체제의 정치적 견제와 균형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대통령이 국회해산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코아비타시옹이 깨지면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대통령 임기는 7년으로 그냥 두고 대신 단임으로 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시라크와 조스팽은 17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한다. 결과가 주목된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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