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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기자 칼럼] 타인 배려 안 한 ‘루저’ 발언 많은 사람에게 박탈감 안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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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근 한 여대생이 TV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해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에 남자 키가 1m80㎝에 미치지 못하면 루저(loser·패배자)”라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됐다. 시청자들은 “외모를 기준으로 루저 운운하는 것에 대해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며 공분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나서서 ‘시청자에 대한 사과’와 제작진 일부 징계 조치를 내렸다. 루저 발언을 한 여대생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제작진 측에서 써준 대본을 따른 것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저 발언’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30대 남자가 방송사를 상대로 1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데 이어 모두 11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된 상태다. 인터넷에서는 ‘루저’를 소재로 한 패러디물이 넘쳐난다.

루저 발언에 대해 “외모에 대한 개인의 생각과 취향인데 뭘 그리 흥분하느냐”고 일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에게 박탈감과 소외감을 안겨줬다는 것이다. 특히 불리한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저신장 장애인들이 입었을 심적 타격은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개성과 인격을 지닌 존재다. 누구도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루저 발언을 한 여대생처럼 ‘키’라는 한 가지 잣대만으로 매도한다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은 깨지고 대립과 소외만이 남게 될 것이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사슴을 기억해 보자. 당당하고 화려한 뿔을 자랑하던 사슴이 결국 그 뿔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됐다. 타인의 약점을 웃음거리로 삼는 곳은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부족하고 약한 곳까지 배려하는 따뜻하고 신중한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효정 (김해외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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