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의 온실가스 규제 방침을 환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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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 국민 한 명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5배인 나라, 그럼에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는 거부한 나라. 바로 미국 얘기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38개 선진국이 온실가스를 2012년까지 1990년보다 평균 5.2% 줄이자는 교토의정서에 대해 미국은 불참을 선언했다. 미국을 제치고 이산화탄소 최다 배출국이 된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한 국제 공조가 무의미하다는 핑계를 댔다. 중국도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들먹이며 버텼다. 이산화탄소 양대 배출국인 미·중이 책임만 떠넘기니 지구촌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 논의는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온난화의 징후가 뚜렷해지자 국제사회의 위기 의식이 고조됐다. 2013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계획의 새 틀을 짤 코펜하겐 총회를 앞두고 각국이 자발적 목표를 속속 내놓는 이유다. 유럽연합(EU)은 90년 대비 20%, 일본은 25%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교토의정서에 따른 의무 국가는 아니지만 중국·인도가 배출 속도를 늦추겠다며 성의 표시를 했고 한국도 EU가 개도국에 제시한 감축 권고안 중 최고치를 약속했다. 그런데 미국은 여타 선진국에 못 미치는 90년 대비 3% 감축안을 내놓은 데다 관련 법안마저 상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달리 기후변화협약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공언해온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선 체면치레도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나마 7일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이산화탄소 등 6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 방침을 밝힌 것은 다행한 일이다. 미국 정부가 의회라는 걸림돌을 피해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세계에 표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이견으로 감축안이 합의, 도출될지 불투명한 코펜하겐 총회에도 희소식임에 틀림없다. 본지를 포함해 세계 56개 신문이 게재한 공동 사설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개도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자면 온실가스 대부분의 배출 책임을 진 선진국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자국 이해에만 연연하다간 공도동망(共倒同亡)을 맞을 뿐이다. 미국 의회에도 변화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