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과학기술이 나를 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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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흔히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경제적인 어려움, 사회적응과 참여의 어려움, 그리고 가족 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어느 사회를 보나 장애인들은 극빈층을 이루기 마련이다. 특별하지 않은 경우 장애인들은 교육에서 소외되고, 이는 소득 높은 직장에서 배제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또 가족 중에 장애인이 생기면 주로 어머니가 그 장애인을 돌보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이로 인한 부담은 가족 전체에게 미친다. 그렇다면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히 복지예산을 늘려주기보다 장애인들에게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취업의 기회를 넓혀줌으로써 그들이 보다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사실 90년대 부시 행정부의 장애인법이 통과될 당시에도 과연 장애인을 위한 막대한 사회적 투자가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는 그들을 경제활동에 다시 끌어들임으로써 얼마 안 가 환수된다는 점이 드러났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면서 장애는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조공학기기 가운데는 특별한 것도 있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해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휴대전화다. 언어장애자와 청각장애자들에게 휴대전화의 문자 기능은 일상생활에서의 정확한 소통을 가능케 해줌으로써 가히 혁명적인 보조공학기기라고 할 수 있다. 또 휴대전화의 음성출력기능은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휴대전화는 컴퓨터와 결합되면서 더욱 스마트해지고 그 활용영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은 큰 장애를 가지고도 충분히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장애분야 종사자들이 어려워하는 점은 장애유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 요구사항에 맞는 제대로 된 기기는 그들이 단순히 정부 보조의 수급자가 아니라 동등한 사회일원으로서의 보다 나은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사회적·도덕적 의미와 가치가 크다. 얼마 전 동영상에서 본 어떤 미국 보조공학기기 개발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 장애인은 없다. 단지 수요자들의 요구를 아직 제대로 못 맞추는 장애기계만이 있을 뿐이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