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공해 '폭력수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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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회사원 A씨(29.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최근 출근과 동시에 평소처럼 인터넷을 통해 e-메일 배달 여부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낯선 ID를 가진 사람이 보낸 메일을 클릭하자 낯뜨거운 여성의 전라사진이 뜨는 사이트로 곧장 연결됐다.

남녀간 성행위 장면이 담긴 동영상은 물론 유사한 포르노사이트와 연결되는 배너 광고가 5~6개나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그날 이후로도 이 e-메일은 매일 전송돼 왔다. 참다못한 A씨는 "더이상 보내지 말라" 며 항의 메일을 띄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A씨는 "외국 포르노사이트에서 어떻게 내 ID를 알고 이런 편지를 보내오는지 모르겠다" 며 불쾌해했다.

e-메일 공해가 심각하다.

인터넷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업의 홍보용으로, 특정집단의 주의.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방편으로, 때로는 사기의 수단으로까지 e-메일이 이용되면서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엔 '인터넷 메일 비즈니스' 란 명목으로 메일 주소를 추출해내는 스팸 프로그램까지 등장, 불특정 다수에게 손쉽게 e-메일을 보낼 수 있는 길까지 열렸지만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는 실정이다.

가장 흔한 스팸메일은 금융다단계 사업과 관련된 e-메일이다.

이들은 '당신은 갑부가 될 수 있다' '90일에 5만달러 벌기' 등 그럴 듯한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보낸다.

대부분 특정 은행계좌에 일정액의 돈을 납부한 뒤 1천여통의 e-메일을 보내면 실적에 따라 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실적을 인정받은 사람은 없다.

최근에는 이적 표현물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백두청년회' 라는 단체의 명의로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e-메일 수만통이 국내 네티즌에게 일제히 전송됐다.

이 단체는 e-메일에서 '안녕하세요! 메일을 받아보시는 모든 분께 동지애적 인사를 드립니다.

4.15태양절을 맞아 백두청년회의 홈페이지가 개설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관련 홈페이지 주소 7개를 소개했다.

주소에 따라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김일성(金日成) 부자(父子)의 사진과 어록은 물론 북한에서 출간된 각종 서적의 소개와 북한방송 청취가 가능한 주파수까지 상세히 올라 있었다.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으나 홈페이지 주소가 대부분 외국에서 개설된 탓에 적이 어려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무차별적인 e-메일 공해에 네티즌들이 뭉쳐 공동 대응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방문자를 2배로 늘려드립니다' 는 제목으로 1백개의 사이트를 광고하는 스팸메일이 보내지자 일부 네티즌들이 메일 발송업체를 찾아내 공개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e-메일은 청소년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보내지고 있어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청소년보호위원회.정보통신윤리위원회 관계자는 "일부 업체와 불순세력들이 e-메일 어드레스 검색엔진을 통해 무작위로 국내 네티즌들의 ID를 수집하고 있는 것 같다" 며 "ID만으로는 성별과 나이를 확인할 수 없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강갑생.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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