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괴테의 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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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문호 괴테(1749~1832)는 알아주는 바람둥이였다.

그러나 그는 천박하지 않았고 이해관계도 깔지 않은데다 사랑을 끊임없이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생각하는 데 사악함이 깃들지 않음)' 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애무사(愛無邪)' 라고나 할까.

괴테는 첫사랑 프리데리케 브리옹과 헤어지고 시 '제젠하임의 노래' 를 지었고 두번째 찾아온 사랑인 샬로테 부프가 자신의 친구와 결혼해 떠나자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썼다.

25세 때 16세이던 릴리 쇠네만을 만나 약혼까지 했지만 이번에는 양가의 반대가 극심해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마음의 상처가 매우 컸던 듯 괴테는 무려 56년 뒤인 1830년에도 한 회고담을 통해 "릴리와 사랑했던 시절만큼 진정으로 행복에 다가간 적은 없었다. 그녀는 나의 마지막 여자였다" 고 고백했다.

그렇다고 그의 여성편력이 끝난 건 아니었다. 바이마르 체류 시절에는 유부녀이던 샬로테 폰 슈타인과 사랑을 나누었다.

39세 때인 1788년에는 꽃집처녀 크리스치아네 불피우스(당시 23세)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동거를 거쳐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크리스치아네가 1816년 사망한 뒤 아들 아우구스트 부부와 함께 살던 괴테는 71세 때 생애의 마지막 사랑으로 기록되는 울리케 폰 레베초를 만났다.

당시 그녀 나이는 겨우 16세. 괴테가 74세, 울리케가 19세이던 1823년에 괴테는 아들 부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요즘 춤추듯 살고 있다" 고 말했다.

"저기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거기엔 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여자 요리사(울리케)가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단다" 는 구절에 이르면 노인네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너무 주책을 부린 듯하지만 한편으론 어린애같은 순수함도 느껴진다.

괴테는 울리케의 모친에게 딸을 달라고 부탁도 했고, 중간에 사람을 넣어 조르기도 했지만 당사자가 끝내 망설이는 바람에 결혼은 성사되지 못했다.

대신 울리케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95세까지 장수했고, 괴테는 울리케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담은 시 '마리엔바트 비가(悲歌)' 를 남겼다.

전직 고관들이 한 여성 로비스트에게 줄줄이 보낸 연서(戀書)들이 장안의 화제다.

진상은 그것대로 철저히 밝혀야겠지만 여하튼 사랑 앞에선 누구나 유치해지고 어린애처럼 변한다는 건 고금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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