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외 불필요한 교육체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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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은 교육계에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과외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고액과외 자금출처 조사 등 고액과외 금지대책에 열중하고 있다. 저소득층 과외비 국고지원책 등으로 공교육 이중화라는 모순된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대책은 임기응변에 불과하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는 없다.

정부는 고액과외문제 자체보다 왜 과외가 생기는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교육제도의 근본을 살펴 보고 앞으로 올 1백년을 생각할 때, 과연 현 교육제도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것인가를 고려해봐야 한다.

우리의 공교육은 중앙집권적이고 소수 엘리트를 키워내는 일류대학 일변도 교육제도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자녀의 일류대학 입학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교육열은 이런 교육제도의 산물이라 하겠다.

농경사회와 제조업중심 사회에서는 소수의 엘리트를 키워내는 교육제도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교육이 개인의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주민의 26%가 대학교육을 받은 뉴욕주가 가장 높은 대학교육률을 보였지만 동시에 뉴욕이 빈부격차가 가장 심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 교육제도의 맹점은 공립대와 사립대의 역할에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공립대와 사립대는 역할이 달라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대는 교육 대상을 전국민으로 하고 사립대는 소수 엘리트 교육을 맡는 것이 마땅하다.

교육의 중앙집권화보다 지방분산을 해 각 지방이 경쟁적으로 훌륭한 교육제도를 만들고 인재만들기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교육제도가 바로 그런 제도로서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주립대는 주민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고 사립대는 엘리트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와 같은 교육제도로 미국은 세계를 제패했다. 우리도 미국과 같은 교육제도를 한 때 갖고 있었는데 바로 조선조 향교와 서원제도였다. 향교는 인재양성을, 서원은 수재교육을 중심으로 했다. 조선조의 우수한 교육제도를 일제가 일본식 교육제도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교육제도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중앙집권식 교육제도를 지양해 교육행정을 대폭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고 국립대를 폐지해 지방공립대로 전환하는 개혁을 제안한다.

둘째, 수능시험을 수시로 볼 수 있도록 하여 시험에 한번 실패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제2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재수 삼수하면서 허송세월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특히 시험과목을 영어.수학.국어 정도로 줄여야 한다. 기타 과목은 고등학교졸업시험제도로 충분할 것이다.

셋째, 초급대학이나 전문대학은 수능시험을 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각 기초자치단체는 초급대학을 설치해 저렴한 가격으로 주민의 평생교육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고등학교 졸업시험제도를 둬 전국 고등학교 졸업생 모두가 일정 수준을 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학 진학을 안할 고등학생들에게는 기술교육의 기회를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1995년도 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14%만이 대학 졸업생이다. 미국의 경우 20%가 넘는다. 우리나라가 일류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국 수준은 돼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와 같이 공립지방대가 서로의 경쟁을 통해 우수 평준화돼 어느 대학을 나오나 인정받도록 돼야 할 것이다. 미국 공립대의 경우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고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방학 중 보충교육을 받기까지 하는 공개입학제도가 있다.

그와 같이는 못한다 하더라도 대학교육과 교육행정의 지방자치화, 제2의 기회를 주는 입학제도, 그리고 대학 선택의 폭을 넓히는 교육개혁을 할 때, 고액과외문제는 조용히 사라지면서 교육백년대계가 세워질 것이다.

이영작 <한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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