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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돈과 개도국 CO2 ‘빅딜’ 진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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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호 06면

전 세계 190여 개국 대표단과 100여 개국의 정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회의가 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것이냐를 논의하는 제1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다.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 7일 개막

1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회의의 가장 큰 목적은 2013년 이후 2020, 2050년까지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정하는 것이다. 현재는 2012년까지 38개 선진국이 1990년보다 온실가스를 평균 5.2% 줄이는 목표가 있을 뿐이다. 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서 정한 감축 목표다. 교토의정서엔 감축 의무가 없던 개발도상국들이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의제에 들어 있다.

그런 만큼 세계 각국이 보이는 관심도 뜨겁다. 취재 등록을 한 취재진이 지난달 이미 5000명을 넘어섰을 정도다. 유엔에서는 예상 인원을 초과하자 취재진에 대한 온라인 사전 등록을 중단했다. 각국 대표단과 취재진뿐 아니라 국제기구·시민단체(NGO) 관계자까지 포함하면 회의 참가자가 2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캐빈 러드 호주 통리 등 98개국 정상이 참석한다.

오바마·원자바오 등 98개국 정상 참석
세계 각국은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렸던 제13차 당사국총회(COP13)부터 2013년 이후의 감축 문제를 논의해 왔다.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90년보다 온실가스를 20%, 2050년까지는 80%를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이나 개도국이 적극 참여한다면 2020년 목표를 30%로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2020년까지 90년 대비 25%를 줄이기로 했다.

2001년 감축 의무 이행을 거부하며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했던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감축에 적극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감축 목표는 2005년 기준으로 2020년 17% 줄이겠다는 것이어서 EU·일본보다 낮다. 그나마 아직 상원에서는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도 않았다.

교토의정서에 따라 감축 의무가 있는 나라들(미국 포함)이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면 2020년에는 90년보다 14~18%를 줄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중국·인도 등이 요구하는 40% 감축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것이어서 이번 회의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교토의정서에서 개도국으로 분류돼 감축 의무가 없지만 지난달 17일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2020년 배출전망치(BAU·business as usual) 대비 30%를 줄인다는 내용이다. 지금처럼 계속 늘어난다면 2020년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8억1300만t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서 30%를 줄인다는 것이다. 2005년 배출량과 비교하면 결과적으로 4% 줄이는 수준이다. 이산화탄소는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멕시코·브라질도 BAU를 기준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지만 선진국들이 재정 지원을 해야 감축하겠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선진국 지원 없이도 감축하겠다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세계 최대 배출국인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보다는 증가 속도를 낮추는 방식을 제시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 국내총생산(GDP) 일정 액수(예를 들어 1000달러)당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의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진국 2020년까지 14~18% 감축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입장 차이가 커 이번 회의에서 감축 목표 설정 등 구체적인 목적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개도국에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기에 앞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솔선수범하라고 개도국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 경제 성장을 지속해야 할 개도국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면 선진국이 신재생에너지 같은 녹색기술과 돈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 대표단의 일원인 환경부의 김찬우 국제협력관은 “코펜하겐 회의를 앞두고 ‘노 머니, 노 딜(No Money, No Deal)’이라는 말이 많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돈 없이는 협상 타결도 없다는 뜻이다.

유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의 이회성 부의장은 “코펜하겐 회의에서 구체적인 숫자까지는 합의하기 힘들 것이고 다음 회의에서 무엇을 정할 것인지 큰 틀에 합의하는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정치적 선언을 내놓는 데 그치고 구체적인 감축 목표 등은 내년 6월 독일 본이나, 내년 12월 멕시코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온난화 가속 땐 2100년 해수면 2m 상승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협상을 벌이는 것은 기상 이변과 지구온난화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북극해에서는 얼음이 녹아 항로가 열리고 있다. 남극과 그린란드 빙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의 눈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 서부와 호주 등지에서는 가뭄과 산불이 빈발하고 있다. 태풍과 폭우 피해도 늘고 있다.
지난달 8개국 26명의 기후학자는 ‘코펜하겐 진단서’란 보고서에서 “2년 전 유엔 IPCC 보고서가 전망한 것보다 온난화가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며 “2100년에는 해수면이 2m 상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2007년 IPCC는 제4차 기후변화보고서에서 “지구의 평균 기온이 지난 100년 동안 섭씨 0.7도 상승했으며, 2100년까지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하면 시베리아·알래스카의 영구 동토층이 녹기 시작하면서 땅속에 갇혀 있는 식물체들이 썩고, 메탄가스가 방출된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보다 온실 효과가 21배나 되는 메탄가스가 쏟아져 나온다면 기후변화·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또 태양광선을 반사하는 북극해의 얼음이 본격적으로 녹으면 태양에너지가 바다에 더 많이 흡수되고 지구는 더 빠르게 더워진다.

전문가들은 기온 상승을 2도 이하로 묶기 위해서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ppm은 100만 분의 1이란 의미)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385ppm으로 산업혁명 이전의 280ppm에서 40% 가까이 상승했다.

서울대 허창회(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2도 상승으로 묶자는 것은 그나마 2도까지는 견딜 만하다는 의미”라며 “전 세계 평균 기온이 4도 상승한다면 한반도는 최소한 7~8도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온이 상승하면 한겨울에도 반팔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덥다가 다음 날 폭설이 오면서 추워졌다가 다시 며칠 뒤 더워지는 식으로 날씨가 뒤죽박죽돼 적응하기 힘들어진다는 게 허 교수의 설명이다.

국립기상연구소 권원태 박사는 “장기 기후예측에서 100년 뒤에는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4도 올라가면 서울의 기온이 서귀포와 비슷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중부 내륙과 산악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가 아열대 기후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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