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원로들도 보수-진보 세 대결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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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진보 성향의 원로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원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과거 국가보안법에 기반해 국민을 감시.억압하던 인사들이 보안법 폐지 반대 발언을 쏟아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1주일 전 보수성향 원로들이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데 대한 대응이다. 현 정권 집권 후 이념갈등.세대갈등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는데 이젠 원로들마저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이런 갈등을 재연하고 있으니 나라의 모양이 부끄럽다.

원로들이 사회의 중대 사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들의 다양한 체험과 경륜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려면 먼저 원로가 원로다워야 한다. 보수 원로들이 1500여명이나 서명했을 때는 그들대로 국가의 장래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6.15 남북 정상회담을 부인하고, 일부 인사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필요성까지 언급한 것은 상식을 벗어났다. 이런 것들로 성명의 취지가 상당히 바랬다. 진보 원로들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상대방을 수구냉전 세력이라고 비방하고 '과거'를 들먹이며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당신들은 말할 자격도 없어"라고 몰아붙이는 의식의 저 너머에서 그들의 오만함을 엿보게 된다.

보수 원로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안보시국강연과 결의대회를 한다는데, 이는 자제돼야 한다. "성명에 추가 서명자가 있어 동참자가 1600여명으로 늘어났다"는 발표는 또 뭔가. 양 진영에선 원로 끌어들이기 경쟁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고 한다. 원로들까지 본격적인 세(勢) 불리기와 국민 편 가르기에 나서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원로들의 언행은 천금과 같이 무거워야 한다. 그래야 원로로서 대접받을 수 있다. 산업화를 이끌었던 보수 원로와 민주화를 주도했던 진보 원로가 서로 손가락질하고 비난한다면 젊은 세대가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절제는 민주사회를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