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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 다시보기] 안도현의 '연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연어, 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시인 안도현씨가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 (문학동네)의 첫 문장이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다분히 시(詩)적이다. 시 하나에 매달려 평생을 살아온 이가 쓴 이 동화는 섬세한 시적 감수성으로 충만해있다.

연어가 경험하는 성장의 고통과 아프고 간절한 사랑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심심찮게 쏟아져 나온 어른들을 위한 동화 중에서 이 책이 유난히 독자들의 사랑을 얻고 있는 것은 시적인 감상에 빠져들게 하는 문장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등이 검푸른 동료 연어들과 달리 유독 자신의 등만 은빛이다.

결함처럼 보이는 이 사실로 인해 유난히 외로움이 많고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더욱 사색하는 주인공이다.

은빛연어는 알래스카 근처에서 불곰에 희생될 뻔한 자신을 구해준 눈 맑은 연어와 사랑에 빠지고 그와 함께 연어의 숙명인 강 거슬러 오르기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연어만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는 사실과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이유일 수 있다' 는 등의 철학적 사유들을 하나씩 풀어나간다.

소설가 신경숙씨는 "인간들이 함정으로 만들어 놓은 손쉬운 물길을 마다하고 '연어에겐 연어들의 길이 있다' 며 폭포를 뛰어오르는 주인공 은빛연어를 따라 헤엄치다 보면 문득 나도 연어가 되고 싶다" 고 표현하고 있다.

1백30여 쪽에 불과한 이 동화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겸허한 풍경을 쉽고도 정제된 표현으로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저자가 연어의 생태 연구 논문과 연어를 물속에서 근접 촬영한 사진집, 연어의 회귀 장면이 담긴 비디오 등을 연구했다.

동화지만 작품의 현실감이 높은 배경이다. 매쪽마다 화가 엄택수씨가 그린 펜화가 들어있어 책이 '예쁘다' 는 느낌을 준다.

1996년 출간돼 지금까지 30만 부가 팔려나갔으며 지금도 찾는 손길이 매달 2천~3천부씩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시집 '그리운 여우' (창작과비평사) '서울로 가는 전봉준' (문학동네)등을 펴낸 시인은 '연어' 이후 '관계' (문학동네) '사진첩' (거리문학제) '짜장면' (열림원)을 잇따라 펴내 성인동화의 개척자란 새로운 이름을 얻고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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