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특보 내정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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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권노갑(權魯甲)고문은 'DJ의 그림자' 다.

1997년 대선 이후 밖으로만 돌던 그가 김대중 대통령 바로 옆으로 불려갈 것 같다.

대통령 정치특보로서의 權고문 역할은 당(黨)과 정(政)을 조율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한다.

"넓은 발과 DJ 분신이란 이미지로 당장 급한 여소야대(與小野大) 양당체제에서의 정국운영 방향 등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할 것" 이라고 여권 고위관계자는 말했다.

여권 핵심부에선 지난해부터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서 믿고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다" 는 지적을 했다.

집권 후반기를 맞는 DJ로선 눈빛만 봐도 뜻을 알아차리는 측근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정치특보는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 처음 만들어졌다.

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한때 정치특보를 둔 적이 있다.

정치특보는 정국 흐름을 감지,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해결책을 건의하기도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정책추진과 관련된 수석비서관들과는 기능과 임무가 다르다.

다만 정치특보의 역할이 불분명해 청와대 보좌진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權고문도 한광옥(韓光玉)청와대 비서실장과의 관계설정이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

DJ와 함께 한 40년 세월을 물으면 權고문은 "그의 그림자 인생에서 내 삶의 긍지를 느낀다" 는 말로 대신한다.

"내가 죽거든 '김대중선생 비서실장' 이라는 한마디만 비석에 써달라" 고 가족들에게 말한 그다.

1930년생인 權고문은 다섯살 위의 DJ를 늘 쳐다보면서 살았다.

權고문은 목포 북국교와 목상(木商.목포상업학교.현 목포상고)선배인 DJ를 지난 61년부터 모셨다.

조직.자금 등을 총괄했으며 민주당 한화갑(韓和甲)지도위원.김옥두 사무총장과 함께 동교동계 1세대다.

박정희정권 시절 두번에 이어 80년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됐으며 그때마다 DJ의 사상과 정치자금 출처 등을 추궁받으며 고문을 당했다.

그래서 그는 전화번호나 사람 이름을 아예 메모하지 않는다.

權고문이 정치특보로 갈 경우 청와대에는 韓실장과 남궁진 정무수석 등 동교동계가 정치관련 주요 포스트를 맡게 된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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