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勞·勞 대결은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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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직장.지역 의료보험조합 통합이 1단계 조직통합을 2개월여 앞두고 노조간 충돌사태를 빚고 있다.

직장의보 노조가 2002년 재정통합 때까지 조직 분리 운영을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지역의보측도 완전통합을 요구하며 오늘부터 '맞불 파업' 을 벌일 예정이다.

소수인 직장노조는 흡수통합에 따른 피해의식이, 지역노조는 주도권 확보의식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두 조직의 입장차이가 첨예했던 터라 조직통합부터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예상은 됐었지만 의보조직을 마비시킨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사태다.

당장 직장의보의 파업으로 직장의보 환자 진료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병.의원은 지역의보마저 파업한다면 대부분의 수입이 끊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환자진료에 차질이 올 것이 뻔하다.

의료보험은 우리 의료체계의 근간이 되는 장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 조직의 노조가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이 통합도 되기 전에 기득권 지키기와 세력다툼을 벌이다니 이보다 더한 노조 이기주의적 행째?어디 있겠는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장기분쟁 중인 축협통합 갈등이나 부두노조 파업과 같이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대리전 양상을 띤 노(勞).노(勞)충돌이라는 점이다.

의보는 농민이나 노동자 단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노.노대결로는 풀 수 없다. 두 노조는 명분없는 파업을 즉각 철회하고 협상으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상급단체도 의보의 공공성을 생각해 지금 당장 대화에 나서 해결노력을 기울이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대로는 통합되더라도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오게 된다.

가뜩이나 의약분업 갈등으로 국민건강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여기에 의보 노.노대결까지 겹친다면 의보통합 전체가 흔들릴 판이다. 우리는 노동계가 통합취지를 존중해 노조를 단일화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현 사태는 정부가 의보의 사회보험적 성격을 내세워 통합의 대의명분과 법적 근거는 획득했지만 그 여건조성을 게을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을 게을리해 통합반대측에 반대의 명분을 주고, 노.노충돌이 충분히 예상됐는데도 대책이 소홀했다.

노.노충돌에 대해 노사정위가 임시방편으로 재정통합 때까지 조직의 분리 운영 방안을 내놓았지만 보건복지부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도 않는 등 정부가 혼선을 보이고 있다.

의보통합은 움직일 수 없는 합의다. 그러나 파업사태로 풀어야 할 과제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의보통합의 핵심은 재정통합이지만 조직통합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전체가 잘못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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