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현장] 두바이꼴 나니 동북아 허브 포기하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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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두바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두바이 지도자들의 창의력이 알고 보니 탐욕에서 나왔고, 리더십 뒤에는 독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장사에 열중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도 빠지지 않는다.

주로 진보 진영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시각은 ‘두바이를 배우자’는 게 단견이었으며, 차제에 우리도 ‘동북아 허브’(중심지) 따위로 힘 빼지 말자는 것이다. 동북아 허브가 기업·금융회사만 살찌우는 정책이라고 여기는 진보 진영으로선 장이 선 것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이 두바이를 빌미로 동북아 허브를 공격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동북아 허브의 밑그림을 그린 당사자가 진보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권노갑 전 의원 등 대통령 측근들이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동북아 허브 구상에 공감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2002년 당시 재정경제부는 1년 내내 금융·물류·비즈니스 허브의 청사진을 만드는 데 매달렸다. 대한민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이 ‘동북아 국장’으로 불릴 정도였다. 관료들은 “상하이나 싱가포르에 밀리지 않으려면 한시가 급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땐 다들 뭔가 해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제동이 걸렸다. 지역 균형발전이 정권의 핵심코드로 자리 잡으면서 동북아 허브는 뒤로 밀렸다. “한시가 급하다”던 관료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침묵했다. 그러는 사이 동북아 허브 구상을 배워간 중국이 우리를 훨씬 앞섰다.

그렇게 허송세월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실망스럽게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그물처럼 촘촘한 규제와 해당부처·이익집단·정치권의 벽을 좀처럼 뚫지 못하고 있다. 외국 유수의 병원을 유치하는 것은 보건복지부와 국회에 막혀 있다. 송도국제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 조건에 맞는 학교 운영자를 찾지 못해 건물만 지어놓은 채 개교를 못하고 있다. 외자유치도 말만 무성했지, 인천·부산 등 경제자유구역에 외국기업의 직접투자는 19억 달러에 불과하다. 어디에 내놓고 말하기 민망한 성적이다.

갈 길이 먼데, 두바이 사태로 또다시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지레 겁먹을 이유도 없다. 두바이가 잘못한 것(무리한 차입과 개발, 비싼 물가, 일회성 이벤트 남발)은 버리고, 잘한 것(과감한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은 택하면 된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두바이 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주저앉는다면, 멀찌감치 앞서있는 상하이 푸둥과 싱가포르·홍콩만 쾌재를 부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 정부 누군가 자리를 걸고, 총대를 메야겠다.

고현곤 경제정책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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