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재기카드 찾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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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0년 4월 14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는 서울 신당4동 2층 자택에서 하루종일 머물렀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16대 총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1992년 3월 25일. 민자당 최고위원이던 JP는 보름 동안 칩거(蟄居)정치에 들어갔다. 전날 14대 총선에서 충청권 28곳 선거구 중 자신의 공화계 출신 후보가 4명밖에 당선되지 않은 위기상황에서다.

JP는 이같이 정치적 어려움을 맞이할 때 칩거정치에 들어가곤 했다. 위기에 처해 사흘, 나흘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여론과 정치적 흐름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생존의 탈출구를 모색했고, 지금껏 대체로 성공했다. 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때 YS 지지로 선회한 것도, 95년 YS한테 팽(烹)당한 뒤 자민련 창당을 선언한 것도 칩거정치의 결과였다.

JP는 14일 조부영(趙富英)선대본부장뿐 아니라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이수영 비서실장, 이덕주.김상윤 특보조차 1층 거실에 기다리게 하다 돌려보냈다. 이들은 "(총선 결과에)충격을 받으신 것 같다" 고 전했다.

새벽 JP는 대전에서 전화한 강창희(姜昌熙)의원에게 "이거 엉망됐다" 고 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JP의 '정계은퇴 선언' 을 전망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다. 측근 의원들과 보좌진은 "명예총재로서 2선에 후퇴해 있는데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당직자들은 "당장은 아니지만…" 이라는 토를 달면서 "칩거 구상이 실패할 경우, JP가 그런 선택(정계은퇴)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 했다.

JP는 이번 칩거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국회 교섭단체(20석 이상)에 실패한 의원 17명인 '무소속 클럽' 이지만, ' 자민련이 와해되지 않도록 지키는 방안을 짜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더 이상 공천권을 행사하기 어려워 보이는 JP의 말을 소속 의원들이 순순히 들을지가 그의 가장 큰 고민이다.

독자적 정당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 어떤 시점에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을 정치적 동반자로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합당이나 정당연합을 하더라도 그의 '몸값' 이 현저히 떨어져 있어 정치적 장래는 불투명한 것도 또다른 고민거리. 정치권에선 '명예로운 정계은퇴설' 이 그를 괴롭힐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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