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무원 100만원 유죄, 정치인 1억원 무죄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농림부 차관이 돌연 사표를 냈다. 유관기관에 근무하는 고교 선배에게서 100만원을 받다 적발됐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차관은 관료가 꿈꿀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직업공무원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평생을 바쳐야 한다. 그나마 극소수의 능력 있고 운 좋은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자리에 오른 해당 인사는 100만원을 잘못 받아 불명예 퇴진을 했다.

물론 100만원이 아니라 단돈 1만원을 받아도 뇌물은 뇌물이다. 그가 돈을 받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공직자들은 이번 사례를 거울삼아 각별히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비슷한 시점에 여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보도자료를 냈다. "민주당 총선기획단장으로 있던 2000년 한 기업인에게서 1억원을 받아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는 내용이다.

이 돈이 불법 정치자금이라 해도 공소시효는 3년이라고 한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는 해당 정치인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두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이 과연 납득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100만원 때문에 평생의 공든 탑이 무너졌는데, 어떤 사람은 1억원을 받고도 괜찮다는 식이니 말이다. 이를 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의원의 보도자료를 보면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깨끗한 정치의 실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이권이나 청탁 그 비슷한 이야기조차 없었다"는 대목이 그런 느낌을 받게 한다.

하기야 법에 어긋나지 않고 도덕적으로 떳떳하면 문제가 아니다. 1억원 아니라 그 이상을 받아도 시비 걸 수 없다. 그러나 의혹은 남는다. 특히 민주당은 "당시 돈이 당에 입금된 기록도 없고, 해당 의원에게서 내용을 들은 사람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수사 당국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받은 돈의 성격과 어디에 썼는지 등을 자세히 밝혀내야 한다. 해당 기업인에게서 돈을 받은 다른 정치인들도 엄격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이 정의가 살아 있고, 법치가 작동함을 믿을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