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아태위 남북접촉 창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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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라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남라인 공동 작품이다. 金대통령은 지난 26개월간 여러 대북라인을 활용해 북측 대남라인을 집요하게 노크해 왔으며 그 결과 정상회담의 결실을 일궈냈다.

金대통령의 대북라인에서 중추신경은 국정원의 K국장-S단장 라인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을 오래 다뤄온 노하우와 익명성에서 국정원을 따라갈 기관이 없다고 판단했음직하다.

또 YS시절 청와대의 무분별한 비선 조직 가동에 따른 혼란을 목격한 金대통령은 평소 "될 수 있으면 공조직을 활용하겠다" 고 말해왔다.

국정원 라인이 이번에 처음 가동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비료제공과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맞바꾸기로 한 베이징(北京) 남북합의도 이 라인의 작품이다.

당시 이들은 이산가족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면 다음 단계로 정상회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6월 15일 발생한 서해 연평해전 사태로 수포로 돌아가 대북라인의 문책성 대폭 교체설도 한때 제기됐지만 金대통령은 기존 라인을 재가동, 이번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삼성.통일그룹 등 민간기업들도 알게 모르게 金대통령이 활용하는 민간 대북라인이다. 특히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의 카운터 파트였던 송호경(宋浩景)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현대의 대북 창구다. 宋부위윈장은 지난해 말 현대의 초청으로 서울에서 열린 통일농구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金위원장의 대남라인은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김용순 위원장)가 핵심이다. 1994년 10월 설립된 아태평화위는 민간차원의 대남.대외관계를 담당하는 노동당의 외곽단체다. 金위원장이 가동해온 대남라인에는 전금철.강덕순 등 실무책임자들이 등장했음은 지난해 베이징 차관급회담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베를린 선언에 즈음해 남북관계가 급진전할 조짐을 보인 이후 전금철 부위원장을 후방으로 빼고 김용순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송호경 수석부위원장을 전진 배치시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또 조국평화통일위원회.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족화해협의회 등 여러 라인을 활용하고 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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